(3) 내가 산을 찾는 이유, 또 다른 나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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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산을 찾는 이유, 또 다른 나를 만나러

입력 2019.08.30 14:31

  • 길을 떠나면 만날 수 있는 내가 있다. 일상의 자리가 역할과 책임으로 묶인 자리라면, 가벼운 배낭까지 벗어 놓은 바위 위의 자리는 자유로운 무심(無心)의 자리다.

길을 떠나면 만날 수 있는 내가 있다. 일상의 자리가 역할과 책임으로 묶인 자리라면, 가벼운 배낭까지 벗어 놓은 바위 위의 자리는 자유로운 무심(無心)의 자리다.

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2003)은 여행기이자 산행기다. 좋은 에세이가 그렇듯 소소한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깊게 생각할 지점들을 선사한다. 자연과 사람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때로 그와 함께 풍경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가 따끔하게 비판하는 세속의 부박함 쪽에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산행을 시작했다. 넘어져 다쳐서 병원을 찾았던 젊은 날과 달리, 자고 났는데 이유도 모르게 팔이 잘 올라가지 않아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 말로는 완치가 어려운 것이었다. 물리치료를 받다 어지간한 것 같아 그만두면 얼마 안 있어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의사는 운동을 권했다. 어깨가 늘 무지근했고 팔이 가끔 저렸으며 체중은 성인병을 예고하고 있었다. 무조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나이와 함께 여기저기서 밀려왔다.

이상훈 선임기자

이상훈 선임기자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무엇이 내게 좋을까. 달리기는 저질 체력으로 어렵고, 수영은 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게 성가시고, 그렇게 하나씩 지우다가 산행을 생각해 냈다. 가족들과 등반하던 어릴 적 즐거운 기억과 지리산을 종주했던 대학시절 뿌듯한 기억이 있었다. 운동도 하고 자연을 즐길 수 있으니 지속가능한 일거양득의 답이었다.

등산화부터 사놓고 몇 주를 인터넷으로 산 구경만 하다가 어느 날 집을 나섰다. 청계산 입구에 도착해 놀란 건 엄청난 활기였다. 일요일이라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온 터라 슬쩍 사람 멀미가 났다. 곳곳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모인 사람들은 시골 장터에 온 사람들처럼 소란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산행을 마친 이들은 굉음을 내는 기계로 흙을 털고 있었다. 무성한 활엽수와 어두운 침엽수 터널을 지나 진달래 능선에 올랐다. 젖은 옷이 선듯하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능선이 높이를 더하니 오가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비로소 산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내 쪽으로 오던 사람이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오래전 읽은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이 떠올랐다. 길에서 만난 사람의 안부를 묻고 처음 보는 사람 집에서 잠을 청하던 안치운이 내겐 무척 낯설었다. 아파트 앞길에서, 지하철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산에 들었다는 한 가지 이유로 낯선 사람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느낌이 따뜻했다.

안치운은 번잡한 도시를 떠나 지도에 잘 나오지 않는 오지를 헤매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전했다. 어느 날은 길을 잃고 화전민의 집 아들 방에서 밤을 보내게 됐다.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 아들은 아침에 이미 밭에 나가고 없었다. 안치운은 김수영 시집을 방에 두고 나왔다. 오죽 아끼는 책이면 먼 길을 떠나는 배낭에 꾸려 넣었을까. 나는 안치운의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며 낯선 사람에게 “수고하십니다”라고 화답했다.

책을 펼쳐 그 부분을 찾는다. 저자가 화전민 집에서 잔 것은 1981년 초였다. 글은 그로부터 20년 후에 쓰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았을 때 집도 사람도 모두 사라졌다. 안치운은 “집의 흔적조차 없는 산 속에서 기억마저 추상화처럼 그 실체를 줄일 대로 줄이는 것이 두려워… 주먹으로 눈시울을 가려야 했다.”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이라는 제목을 짐작케 하는 사연이다.

197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간 안치운은 “더러운 세상이 극복될 수 없다고 여겨질 때마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산으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시대와의 불화가 그를 산으로 이끌었다. 20여년이 흐른 1990년대 후반 그는 여전히 ‘병든 서울’을 떠난다고 말한다. 시대와의 불화는 여전해 보이고 옛길에 대한 그의 사랑도 여전하다.

안치운은 그리운 옛길을 걸으며 옛길을 살려낸다. 강원도 인제에 이르렀을 때는 이곳이 옛 춘천도호부의 속현으로 기린현에 속해 있었다는 걸 밝힌다. 발길은 갈터, 연가리골, 쇠나드리, 진동리로 이어진다. ‘신갈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함박꽃나무, 엘레지, 주목, 등대시호, 한계령풀, 점봉산 엉겅퀴, 조록싸리’ 같은 알아서 반갑고 몰라서 궁금한 이름들이 길을 따라 끝없이 등장한다.

내 뒤에 오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찾은 진동계곡은 공사 때문에 어수선했다. 안치운은 사라진 진동계곡 옛길에서 길의 의미를 생각한다. “현대문명은 길이라는 진보의 개념 위에 세워졌다. 그 아래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깊은 산에 들어 안치운이 마주한 것은 현대문명의 명암이다. 안치운은 옛길들을 걸으며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을 대신한 조야한 한자식 지명들을 불편해한다. 그리고 제 터전에서 쫓겨난 화전민들이 도시 하층민이 되고 마는 현실에 분개하며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된 자연을 안타깝게 증언한다.

열림원

열림원

안치운만큼 깊고 높은 산을 가기는 어려웠다. 나의 경우 마음먹고 떠나봐야 서울과 경기도 산들을 바쁘게 올라 바쁘게 내려오는 정도였다. 유명한 산들은 인터넷과 책으로 구경했다.

자주 가는 산은 북한산이다. 북한산을 오르는 길은 많다. 구기동에서 비봉을 오르고, 수유리에서 대동문을 오르고, 우이동에서 백운대를 오른다. 계절에 따라 길은 화려한 꽃과 짙은 녹음과 타는 단풍을 펼쳐 보인다. 겨울이면 녹음으로 가렸던 시야가 마음마저 시원하게 먼 곳까지 펼쳐진다.

그렇게 새로운 풍경을 눈에 넣으며 나무들 사이 오솔길을 걷는다. 온몸에서 땀이 솟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걷는 게 아니라 숲속을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힘이 들어 적당한 바위에 앉는다. 땀이 흘러들어 따가워진 눈을 훔친다. 두고 온 일상이 아주 먼 데 소식처럼 느껴진다.

길을 떠나면 만날 수 있는 내가 있다. 일상의 자리가 역할과 책임으로 묶인 자리라면, 가벼운 배낭까지 벗어 놓은 바위 위의 자리는 자유로운 무심(無心)의 자리다. 안치운은 말한다. “여행은 수없이 낮아지기 위한 움직이는 연습과 같다. 자연과의 만남,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깊고 넓은 태도를 지니게 한다.”

뒤늦게 산행을 시작한 나 같은 사람에겐 오랜 세월 산을 오르고 길을 걸었던 안치운 같은 안내자가 있어서 든든하다. 인터넷을 뒤지면 교통편부터 길까지 자세하게 사진으로 남겨놓은 블로거들도 많다.

산에 오르면 표지판도 있고 누군가 달아놓은 리본도 있다. 헷갈리는 갈림길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펄럭이는 리본만큼 반가운 것은 없다. 산행 초보자인 나는 리본을 달진 않는다. 나도 언젠가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리본을 달게 될까. 오십이 돼서야 비로소 내 뒤에 오는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산행이 내게 준 선물의 하나다.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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