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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행복한 노년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입력 2019.08.16 15:20

  • 성지연(국문학 박사, 전 연세대 강사)

베일런트는 부유한 상속자였던 하버드 졸업생의 쓸쓸한 노후를 평가하며 인간의 말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이라고 단언한다.

행복한 사람을 보면 행복한 줄 알겠다. 하지만 막상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난감하다. 행복하고 싶다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2002)은 여기에 대한 안내서다.

저자 조지 베일런트가 지난 2014년 TEDx 암스테르담에서 강연하고 있다./유튜브 캡처

<행복의 조건> 저자 조지 베일런트가 지난 2014년 TEDx 암스테르담에서 강연하고 있다./유튜브 캡처

<행복의 조건>의 원제는 ‘잘 늙기(Aging Well)’다. 나는 이 원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50세의 행복론으로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베일런트는 814명에 이르는 성인남녀의 삶을 1938년부터 70년간 추적 조사한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 연구’를 바탕으로 <행복의 조건>을 썼다. 책은 세 종류의 집단을 다룬다. 268명의 하버드 졸업생, 이너시티라는 서민 지역의 소년 출신 456명, 터먼 연구에서 추린 천재아동 출신인 90명의 여성이다.

‘오십, 길을 묻다’라는 이 기획에 의미심장하게도 이 책 7장의 소제목 중 하나는 ‘50세 이전의 삶으로 70대 이후의 삶을 예견하다’다. 그 내용은 뭘까.

건강한 노후를 예측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베일런트는 통념과 달리 조상의 수명, 콜레스테롤, 스트레스, 부모의 특성, 유년기의 성격, 사회적 유대관계는 성공적인 노화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고 본다. 이어 건강한 노화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일곱 가지 요소로 비흡연 또는 금연, 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알맞은 체중, 안정적인 결혼생활, 규칙적인 운동, 성숙한 방어기제, 교육받은 햇수를 들고 있다. 베일런트는 50세 이전까지 이런 것들을 조절할 수 있으니 50세 이후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고 말한다.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50을 몇 해 남기지 않았다. 규칙적인 운동은 해본 적이 없고 체중은 권장치를 넘었다. 내게 행복한 노년은 불가능한 걸까. 하버드대 졸업생은 1920년대, 이너시티 집단은 1930년대, 터먼 여성 집단은 1910년대 생이다. 지금 오십 전후면 1970년 전후 생이니 이들보다 훨씬 긴 생애를 살아가야 한다. 오십을 조금 더 늘여서 봐주면 안 될까.

이 책에 나오는 라인홀트 니부어의 ‘평온의 기도’가 용기를 줬다. 기도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신에게서 구했다. <행복의 조건>은 이너시티 집단의 한 남자가 ‘평온의 기도’를 성실히 지켜 평생 용기와 인내심을 지녔다고 적어놨다. 남자는 성공적인 노년의 사례였다. 그래서 나는 오십이란 숫자에 연연치 않고 일곱 가지 요소 중 운동이라도 시작해볼 결심을 했다.

더 위안을 주는 것은 성인도 계속 성숙한다는 연구결과다. 하버드 졸업생 67명을 대상으로 방어기제의 성숙 정도를 평가한 결과 50세와 75세 때의 적응양식은 대조적이었다. 50세 이후의 25년 동안 미성숙하고 부적응적인 방어기제들은 감소하고 이타주의나 유머 같은 성숙한 방어기제가 증가했다. 성숙은 평생에 걸쳐 이뤄지는 과업이다. 성인의 사회적 발달은 연속적으로 이뤄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지평은 더 넓어진다.

[오십, 길을 묻다](2)행복한 노년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이 발달과정에는 여섯 가지의 연속적 ‘발달과업’이 있다. 정체성 확립, 친밀감 발전, 직업적 안정, 생산성 과업, 의미의 수호자, 통합이 그것들이다. 하나의 발달과업을 이루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발달과업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청소년기에 확립돼야 할 정체성을 50세까지 확립하지 못하면 중년이 돼서도 일을 통한 성취감을 맛보지 못하며 친구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에 걸린 것은 경제문제다. 하버드 졸업생은 100% 백인에 중산층 이상의 부모를 가졌고 50세 평균소득도 압도적이다. 터먼 여성 집단은 지능이 높은 집단이고, 이너시티 집단은 99%가 백인 남성이다. 이들이 빈곤문제에서 상대적 이점을 누렸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노인빈곤율을 보이는 우리 사회 현실을 생각하면 경제적 빈곤이 노년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기 어렵다.

베일런트는 부유한 상속자였던 하버드 졸업생의 쓸쓸한 노후를 평가하며 인간의 말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이라고 단언한다. 당연히 경제문제의 해결이 행복한 노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선은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성과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나는 질문을 바꾸어본다. 경제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면 행복한 노년은 무엇으로 이뤄지는 걸까. 앞서 말한 건강한 노화를 위한 일곱 가지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여섯 가지 발달과업을 완수해 나가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행복한 노인과 행복하지 못한 노인

이 책의 장점은 이상적인 노년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는 데 있다. <행복의 조건>은 연구결과만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연구과정에서 오랜 기간 관찰한 인물들의 실제 삶을 싣고 있다. 행복한 노인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행복하지 못한 노인들에겐 무엇이 문제인지를 오랜 기간의 관찰을 통해 부각시킨다.

‘암울한 유년기를 딛고 화려한 노년을 맞이하다’, ‘놀이와 창조로 불멸의 삶을 예약한 행복한 사람’, ‘삶의 불연속성을 뛰어넘은 회복탄력성의 화신’ 등은 행복한 노년의 사례들이다. 평탄한 일생을 보낸 인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도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행복한 노년이라는 이상적인 지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쇳조각에서 금을 만들어낸 삶의 연금술사’로 소개된 수잔 웰컴은 행복한 노년의 롤모델로 삼을 만하다. 그녀는 불행한 양육환경과 방황하는 젊은 날을 거쳐 훌륭한 노년에 도착해 있었다. 40대에 이타주의와 중용의 미덕을 갖췄고, 76세에 이르기까지 사회활동 반경을 점점 넓혀갔다. 가족들과는 친밀하게 지내며 이웃과도 터놓고 지냈다.

50세 이후는 처음 가는 길이다. 아니 모든 인생이 처음 가는 길이다. 딸도 처음 해봤고, 엄마도 처음 해봤고, 노인도 처음 해보게 될 것이다. 닥쳐서야 알게 되는 일들이 참 많았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한다. 앞 세대만 해도 부모를 모시고 사는 집이 많았다. 그런데 동년배 친구 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집은 거의 없다. 자식 세대가 같이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인 가구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친구들과는 나중에 혼자 살다 죽게 될 수도 있으니 그때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연락망을 짜놓자는 얘기까지 웃프게 나눴다.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게 있고 준비할 수 없는 게 있을 것이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고, 준비할 수 없는 것은 인생의 신비로 즐길 수 있게 되기를 스스로에게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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