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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모자의 ‘정리정돈’

입력 2019.08.09 14:39

  • 김택근 시인·작가

호수가 쓰레기로 뒤덮인 것은 우리 마음에 쓰레기가 들어있음이다. 마음속이 복잡하면 내 주변도, 인간관계도, 컴퓨터 속의 파일도 헝클어져 있음이다. 집안과 마을과 나라를 정리정돈하는 바람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

큰비가 내리면 호수는 쓰레기로 뒤덮인다. 산과 들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가 호수로 들어온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것들이다. 바닷가 백사장 또한 쓰레기장이다. 피서지마다 쓰레기가 넘쳐난다. 요즘 지자체마다 쓰레기 비상이다. 아무리 치워도 버리는 데는 당할 수가 없다.

냉장고가 꽉 차 있으면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시 먹을 것을 구입한다. 옷장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무슨 옷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멀쩡한 옷을 놔두고 새것을 산다. 창고가 꽉 차 있으면 무슨 재료와 연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새로 사들인다. 피서지에 음식쓰레기가 넘치는 것은 무엇을 얼마만큼 먹을지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정리해 두지 않으면 지닌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중복·과잉 소비를 한다. 결국 남는 것은 버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낡아서, 쓸모가 없어서, 싫증이 나서 버린다.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쓰레기 배출량은 세계에서 최상위이다. 진정 부끄럽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제품 포장에만 열을 올린다. 이는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유독 정리정돈을 강조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세계 모자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영안모자㈜이다. 영안모자는 아예 사훈이 ‘정리정돈’이다.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모자왕’이라 불리는 백성학 회장은 나름 독특한 소신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정리정돈의 연속이었다고 술회한다. 모자 제조업체가 세계적인 기업 클라크지게차를 인수한 이면에는 정리정돈이 있었다. 그는 정리정돈을 하면 경영에서도 무리를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가진 것들을 정확히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정리하여, 내일의 새 길을 찾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영안모자의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반세기 전의 영수증도 보관되어 있다. 정리정돈을 잘해야 투명한 경영도 가능하다. 격변기에 가혹한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정리정돈 덕분에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정리정돈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김택근

김택근

“정리정돈을 하면 정신도 가지런해진다. 몸과 마음에 대한 정리정돈이 되어 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정리정돈이 되어 있으면 있어야 할 자리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 어떤 사물을 정갈하게 보관한다는 것은 그 사물의 존재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함이며 또한 관심을 갖는 일이다. 이는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매우 큰 일이다. 모두가 자신의 주변을 살피며 살았다면 온 나라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문명의 이기(利器)라도 방치하면 순식간에 쓰레기로 변해버린다. 개인도 집안도 마을도 나라도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

호수가 쓰레기로 뒤덮인 것은 우리 마음에 쓰레기가 들어 있음이다. 마음속이 복잡하면 내 주변도, 인간관계도, 컴퓨터 속의 파일도 헝클어져 있음이다. 집안과 마을과 나라를 정리정돈하는 바람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정리정돈하면 주변이 밝아진다. 그래서 그 속의 내가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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