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다는 것은 시간이 혼자에게만 쏟아짐이다. 그 시간의 무게를 분산시키지 못하고 사회적 외톨이가 되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외로움은 늘 벼랑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유명 시인이 홀로 살던 경기 고양시의 한 연립주택에서 숨졌다. 시신은 숨을 거둔 지 보름 만에 발견됐다. 동료 시인은 그의 죽음이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가슴을 쳤다. “우리가 죽인 것이다. 우리가 한 시인을 죽인 것이고, 한 시민을 죽인 것이다.”
망자는 말이 없으니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다. 시인은 세상과의 불화로 은둔을 택했고, 끝내 세상에 나오고 싶지 않아서 세상을 버렸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시를 지어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지만 정작 자신의 가슴은 이렇듯 말라버렸던 모양이다. 시인도 외로웠을 것이다. 그 외로움은 깊고 진했을 것이다.
또 홀로 살던 30대 여인이 부산의 한 빌라에서 숨졌다. 여인은 사망한 지 40일 만에 발견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가던 여인은 공과금과 월세가 밀려 있었고, 신경 안정 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경찰은 고독사로 추정했다. ‘외로운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현대인은 유독 고독에 약한 듯하다. 여인은 자신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유폐시켰을 것이다.
시인의 연립주택에는 보름 동안, 30대 여인의 빌라에는 40일 동안 누구도 찾아가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실시간 아주 먼 나라의 소식에 환호하고 탄식하지만 정작 가까운 이웃의 안부나 소식은 알지 못한다. 당장 옆 동네에 불이 났어도 대중매체가 전해줘야만 비로소 반응하는 시대이다. 옆에 있어도 우리는 모두 멀리 있는 존재들이다. 바로 곁에 주검을 놔두고 도시인들은 주식시세를 살피고, 스포츠 스타의 근황을 챙기고,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다. 도시에는 보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제법 크다 싶은 마을에는 불효자, 미친 사람, 그리고 장애인이 있었다. 마을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다스리고 품었다. 불효자는 부모 대신 마을사람들이 매를 들었고, 미친 사람은 돌아가며 거뒀고, 장애인에게는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누구도 내치지 않았다. 손과 발이 불편한 채로 평생을 얻어먹어도 오래 살았다. 혈연과 지연 공동체는 약자들의 울타리였다.
그런데 세태와 인심이 바뀌었다. 우리는 지금 빛처럼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다. 하지만 낙오된 사람들의 절망과 아픔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서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생각 속에 내가 지워졌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집을 나온 젊은이들, 부모 잃은 아이들, 자식 없는 노인들, 식구들이 떠난 가장들이 무관심 속에 떠돌고 있다. 삶의 반대편에는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다.
김택근
독거(獨居)가 늘면서 고독사 위험군도 늘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시간이 혼자에게만 쏟아짐이다. 그 시간의 무게를 분산시키지 못하고 사회적 외톨이가 되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외로움은 늘 벼랑이다. 고독사는 이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함부로 버려지고 있다. ‘인간의 최후’가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저들을 버리고, 저들의 주검을 방치하고 우리는 어디로 몰려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들은 어디에 내릴 것인가. 내가 누군가를 버림은 나 또한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음이다. 오늘도 누군가 홀로 울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