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물리친 구국의 영웅을 그렸음은 의미심장하다. 충무공은 키스에게도 흥미로운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충무공이라 알려진 초상화를 옮겨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이순신 장군 추정 초상화 / 송영달 교수 소장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의 판화는 특별하다. 그녀의 작품이 실린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책과함께)를 보는 순간 빨려 들어갔다. 키스는 1919년 3·1혁명 직후 한국을 찾아와 이 땅의 풍경과 인물들을 그렸다.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이라는 작품은 압권이다. 동대문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달빛은 금방 흘러내릴 것만 같다. 비록 일제가 강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한국에 매료되었고, 한국인을 사랑했다. 산천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주간경향>이 발굴한 기사를 보면 키스가 그린 ‘무인(武人)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충무공이라는 것이다. 이 초상화의 뒷면 병풍에는 거북선과 판옥선 등이 그려져 있다. 거북선을 배경으로 그려진 초상화는 키스의 작품이 유일하다. 당시 존재했던 무인의 초상화를 본 후 키스가 옮겨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물리친 구국의 영웅을 그렸음은 의미심장하다. 충무공은 키스에게도 흥미로운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충무공이라 알려진 초상화를 옮겨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키스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훌륭한 인물과 빛나는 역사가 있음에도 왜 나라를 잃었을까.’
먼 나라 화가의 화폭에 남아있는 장수가 충무공이라면, 나라를 구한 영웅의 진영마저 외국인이 간수한 셈이다. 실제로 충무공의 진영은 남아있지 않다. 절세의 영웅이기에 거기에 맞는 풍모로 상상할 뿐이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모셔진 영정이나 동상의 얼굴은 모두 다르다. 안중식, 최우석, 이상범, 성재휴, 김은호, 장우성 등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렸다. 정부가 표준 영정을 마련해 보급하기도 했다.
키스의 무인 초상화는 이제껏 우리가 봐온 이순신 장군의 풍모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가 상상했던 명장의 모습도 아니다. 얼굴은 마른 편이고, 눈이 치켜 올라갔고, 수염 또한 풍성하지 못하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키스의 모든 그림은 대상을 과장하거나 비틀지 않았다. 나라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는데 충무공이 어찌 온화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온갖 고초를 당했는데 어찌 얼굴과 몸에 살이 오를 것인가.
김택근
키스와 함께 여행했던 언니 엘스펫 키스는 이런 글을 남겼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흑갈색의 옷에다 조개 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일본 사람은 총칼을 차고 보기 흉한 독일식 모자에 번쩍이는 제복을 입은 데다가 덩치도 왜소했다.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은 초라해 보였다.’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서 용수를 쓰고 끌려가는 사람들을 키스 자매는 이렇듯 당당히 묘사하고 있다.
키스 자매는 한국에 대해 애정과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빼어난 그림과 정직한 글을 남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키스가 무인 초상화를 모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 그래서 그 주인공이 충무공이라는 주장에 믿음을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