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 속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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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 속의 폭력

입력 2019.06.28 15:26

  • 김택근 시인·작가

소시민들은 작은 것에도 눈물을 흘린다. 그런 약점을 윽박지르며 약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자들은 폭력배에 다름 아니다.

꽤 밤이 깊었고 전동차 안이었다. 중년의 사내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연결통로의 문을 열고 전동차 칸을 넘어왔다. 사내는 한쪽 다리를 거의 끌다시피 절었다. 한눈에 봐도 걸인이었다. 밤이 늦어서 승객이 별로 없었다. 사내는 힘겹게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는 고통의 낯빛을 거두더니 이내 일그러진 표정으로 차 안을 훑어보았다.

케냐 마키마에서 한 여성이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허리를 밧줄로 졸라매고 있다./경향DB

케냐 마키마에서 한 여성이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허리를 밧줄로 졸라매고 있다./경향DB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가 똑바로 서서 제대로 걸어 다녔다. 승객도 적고 거의가 취객들이라 ‘영업’에 흥미를 잃은 듯했다. 차 안을 오가더니 전동차가 멈추자 쏜살같이 뛰어내렸다. 그는 마침 정차해 있던 다른 전동차로 옮겨 탔다. 승객들은 한동안 그가 사라진 전동차 문을 바라봤다. 차 안의 공포도 빠져나갔다. 문득 옛일이 떠올랐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귀갓길이 우울했다.

서울생활을 막 시작할 때였다. 종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아저씨는 주춤거리다 말을 건넸다. “학생, 몇 푼만 도와주게. 실은 자식놈을 만나러 서울에 왔다가 돈을 잃어버려 집에 내려갈 여비가 없다네. 혹시 여유가 있다면….” 무슨 말이 필요한가. 지닌 돈을 모두 털어서 드렸다. 그러면서 서울역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드렸다. 버스 탈 돈이 없어서 자취방까지 걸어왔지만 뿌듯했다. 그날 밤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더욱 생각났다.

그런 며칠 후 종로 그 자리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아저씨가 여전히 서울에 있었다. 다른 학생에게 똑같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아니 멍해졌다고 해야 하나. 유심히 살펴보니 아저씨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학생을 붙들고 구걸하고 있었다. 도시의 비정을 뼛속 깊이 느꼈다.

처음에는 속은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다가 아저씨의 뻔뻔한 구걸이 무서워졌다. 그렇게 당한 사람이 많이 있을 텐데도, 그런 학생들이 자신을 보고 있을 텐데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구걸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불쌍해 보였던 얼굴이 무서워 보였다. 아저씨의 눈과 마주칠까봐 시선을 돌렸다. 정작 피해자인데도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아저씨는 두려움 자체였다.

김택근

김택근

구걸 속에도 이렇듯 폭력이 들어 있었다. 아마 지금도 그러한 행태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후로 거리에서 또 전동차에서 마주치는 걸인들을 자세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구걸 속 폭력’의 피해는 정작 구걸로 연명해야 할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소시민들은 작은 것에도 눈물을 흘린다. 그런 약점을 윽박지르며 약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자들은 폭력배에 다름 아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여러 구호단체들이 경쟁적으로 후원금 모금광고를 TV에 내보내는 것도 보기에 불편하다. 요즘 구호단체의 TV 광고가 부쩍 늘었다. 내용도 후원금을 내지 않으면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노골적이다. 후원금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후원금의 일부는 필경 광고료로 쓰일텐데 이 또한 찜찜하다. 이와 함께 그간 명성을 쌓아온 일부 믿을 만한 구호단체가 상식 밖의 후원기금 운용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부디 자비의 손길들이 다른 손을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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