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는 NBC <웨스트윙>이나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정치드라마가 없을까. 이에 대다수 드라마 관계자들은 “한국의 현실 정치가 드라마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답으로 대신하곤 했다. 하지만 이도 정답은 아닌 모양이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인 JTBC 새 금토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웰메이드 정치드라마에 대한 방송가와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줄 전망이다.
JTBC
드라마는 제목처럼 300명의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2700명의 보좌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한국 정치의 다채로운 이면을 드러낸다. 노회한 다선 국회의원과 그를 보좌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엘리트 보좌관들, 성취욕을 품고 여의도에 입성한 초선 비례의원과 여성 의원을 얼굴마담으로 활용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의 적폐 의원들, 여기에 소수긴 하지만 링거까지 꼽아가며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매진하는 정의로운 의원 등 국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전투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60분을 꽉 채웠다. 극성이 강조된 부분도 있지만 드라마를 시청한 현직 보좌관들 사이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내용은 주인공의 얼굴’이라는 농담이 들려올 정도로 개별 에피소드들이 제법 현실감 있게 그려졌다.
출연배우 대부분이 기민한 연기를 보였지만 특히 9년 만에 안방으로 돌아온 이정재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한동안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이나 <신과 함께>의 염라대왕처럼 제왕적 이미지를 소비했던 그는 <보좌관>에서 몰락한 집안 출신으로 경찰대를 졸업하고 4선 국회의원의 수석보좌관까지 오르는 장태준 역을 나무랄 데 없이 소화했다. 드라마 <모래시계>나 영화 <신세계>에서 보여준 기존 이미지를 영리하게 재해석하며 기대감을 충족시켰다는 평가다.
장태준의 보좌를 받는 송희섭 역의 김갑수는 <보좌관>이 한국형 정치 드라마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끔 한 일등공신이다. 비열함을 등에 업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청와대에서 칠순잔치를 꿈꾸는 송희섭의 욕망은 김갑수의 실감나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제작발표회 때 “미국 드라마처럼 정의로운 정치인 연기를 하고 싶지만 한국의 정치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감안하고 봐달라”는 그의 농담 섞인 당부가 이해되는 지점이다.
연출자 곽정환 PD의 디테일한 연출도 돋보인다. 선악 대립이 선명했던 기존 정치드라마와 달리 <보좌관>은 여의도 한복판의 생존을 향한 치열한 두뇌싸움을 입체적이면서 역동적으로 포착했다. 그래서 송희섭은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에서 막말을 해 몰매를 맞는 쇼를 펼치고, 장태준은 자신에게 유리한 인물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다. 실제 우리네 정치, 나아가 삶이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처럼 <보좌관>은 인물들의 욕망이 브라운관에 일렁이게끔 펼쳐냈다. <추노> 이후 오랜만에 선 굵은 드라마를 선보인 곽 PD는 이번 작품으로 정치 겉핥기가 아닌 인간의 내면까지 들여다보며 다시금 연출 인생에 한 획을 그을 채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