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때로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쉽다. 정다원 감독의 <걸캅스>는 디지털 성범죄, 클럽 내 약물 강간, 여성경찰 등 요즘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익숙한 소재를 담고 있다. 그래서 낯설지는 않지만, 맘놓고 웃기에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소재가 주는 무게 때문이다.
영화 <걸캅스>는 형사 미영과 지혜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를 돕기 위해 비공식 수사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CJ엔터테인먼트
전설의 기동대 형사, 미영은 민원실로 밀려나 있다.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은 그도 피할 수 없었다. 이곳에 과잉진압으로 징계를 받은 강력반 사고뭉치 형사 지혜가 합류한다. 어느 날 민원실에 한 여대생이 찾아온다. 그녀는 겁에 질려 있다. 알고보니 48시간이 지나면 그녀의 동영상이 인터넷 사이트에 뿌려진다. 미영과 지혜는 강력반에 협조를 요청하지만 퇴짜를 맞는다.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이 많은데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이버범죄수사대와 여성청소년계도 찾는다. 한 여성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문제라고 호소하지만 “이런 사이트 만 개가 넘는다”는 핀잔만 듣는다.
미영은 말한다. “이 사건 우리가 치자. 우리밖에 없어!” 물론 비공식 수사다. 민원실 동료 장미 주무관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녀는 국정원 댓글부대 출신의 해커다. 그러나 민원실장이 이들을 탐탁히 볼 리 없다.
“그거 저희 부서 일 아닌데요?” 조직이 자주 빠지는 함정으로 ‘부서 이기주의’가 있다. 경영학에서는 부서 간 칸막이로 협업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사일로 효과’라고 한다. 사일로란 곡식이나 시멘트, 자갈, 광석, 화학제품, 가스 등을 저장하는 원통형의 창고다. 격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사일로 안에 든 내용물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사일로 효과는 조직 내 독립성이 강하거나 협업 시스템이 부족할 때, 혹은 조직 내 경쟁이 과도할 때 발생할 수 있다.
저서 <사일로 이펙트>를 쓴 질리언 테트는 혁신기업 소니가 몰락한 이유로 사일로 효과를 꼽는다. 직원수 16만명에 사업영역을 워크맨, TV, 컴퓨터, 주택보험, 영화 등으로 확대하면서 소니는 각 사업부를 별도의 독립회사처럼 운영하는 ‘컴퍼니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부서 간 소통이 막히면서 소니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데 실패한다. ‘35개의 전자기기에 35개의 충전기’는 소니의 사일로 효과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준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사일로 효과가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대형은행의 금융트레이딩 팀들은 같은 회사 내에서도 다른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고, 중요한 정보가 사내에 제때 전달되지 못했다. 위기가 시작됐을 때 글로벌 금융기관이던 UBS조차도 그동안 신나게 팔았던 부채담보부증권(CDO)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막대한 손실을 봐야 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조직의 사일로 효과를 혐오했다. 그는 “사일로는 악취를 풍긴다”며 “자신의 회사가 번창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는 조직원이라면 당연히 사일로를 증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일로는 속도를 죽이고, 아이디어를 죽인다”고 말했다. 잭 웰치와 그의 아내 수지가 쓴 저서 <잭 웰치의 마지막 강의>에 나오는 얘기다.
GE는 ‘워크아웃 타운미팅’ 제도를 도입했다. 마을회의를 하듯 다양한 부서 직원들이 참가해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사일로 효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직 공동의 목표를 뚜렷이 제시하고, 보상기준을 개인의 성과가 아닌 조직에 대한 기여도로 바꿔야 한다.
다시 영화 속으로 가보자. 사건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경찰은 협동체제로 바꾼다. 민원실과 교통계가 합심해 CCTV로 용의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강력계는 이들을 검거하러 나선다. 결과는? 일망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