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이 다녀간 하회마을~농수산물도매시장~봉정사 32㎞ 구간 명소로 육성
‘한국 속의 작은 한국.’
경북 안동이라는 지명 앞에 이처럼 어울리는 수식어가 있을까.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정체성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안동이 한국사에서 자리하고 있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불교와 유교, 기독교로 이어지는 문화사적 퇴적층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어서다. 봉정사 극락전, 하회탈 및 병산탈, <징비록> 등 국보 5점을 비롯한 국가 지정 문화재 94점 등 322점의 문화재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다.
6월 2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의 모습. / 백경열 기자
올해, 그리고 20년 전 영국 왕실이 ‘작은 한국’을 찾았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다.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며 1999년 4월 21일 안동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하회마을을 시작으로 고택과 사찰 등을 방문했다. 당시 여왕은 고추장·김치를 담그는 모습과 소가 밭을 가는 풍경, 탈춤 등을 보며 한국 전통문화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지난 4월 14일에는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어머니가 거닐었던 길을 그대로 다녀갔다.
한국 유교문화 전통 간직한 하회마을
앤드루 왕자는 안동 방문 다음날에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안동을 주제로 인사말을 나누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안동이 한국과 영국 간 교류·협력의 상징적 장소이자 국제적 관광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동시는 20년 전과 올해 영국 왕실의 대를 이은 방문을 재조명해 여왕 등이 다녀간 하회마을~농수산물도매시장~봉정사의 약 32㎞ 구간을 ‘로열웨이(The Royal Way)’로 이름 붙이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안동에서 차를 타고 예천 방향으로 약 25㎞를 달리면 한국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전통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안동 시내에서 출발하는 46번 시내버스도 하회마을을 향한다. 하회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8대 으뜸 명소에 포함돼 있으며,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했다.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씨족마을이며, 특히 조선시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 곳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돼 좌향이 일정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주로 남쪽을 향해 창을 내는 다른 마을의 집과는 다른 모습이다. 1984년에는 마을 전체가 국가민속자료로 지정됐다.
하회마을은 서민과 양반문화가 함께 살아 숨쉬는 하나의 커다란 화합의 장이다. 서민층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였던 ‘선유줄불놀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온다. 특히 1997년부터 상설공연이 진행된 탈놀이의 경우, 최근 누적 관람객이 3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영국 앤드루 왕자도 탈놀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앤드루 왕자는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과 ‘담연재’ 등을 들렀다. 안동시는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방문 당시 차렸던 생일상을 재연, 대를 이은 영국 왕실의 방문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1999년)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매우 따뜻한 인사를 받았고, 특히 73번째 생일상을 받은 걸 깊이 기억하고 있다”면서 여왕이 보낸 친서를 소개했다.
5월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영국 앤드루 왕자가 엘리자베스 2세 방문 당시 차린 생일상이 재연된 모습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 경북도 제공
하회마을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봉황이 머물렀다고 해서 봉정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사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으며, 한국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극락전이 유명하다. 봉정사는 지난해 6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6곳과 함께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봉정사는 지난해 7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산사, 한국의 승지승원’으로 지정된 세계유산 중 문 대통령이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곳이 바로 봉정사였던 것. 문 대통령은 자현 주지스님과 차를 마시고 극락전, 대웅전 등을 둘러봤다.
문화와 종교, 농촌체험 더한 관광
이 사찰은 하절기(4~9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외 기간에는 오후 5시까지 일반인의 방문을 허용한다. 이용요금은 성인 기준 2000원이며, 어린이와 청소년은 각각 600원과 1300원이다. 미리 예약할 경우 1박2일간 사찰 예절교육과 다도 체험, 염주 만들기 등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도 있다. 안동시 측은 “특히 국화축제 기간인 매년 10~11월 초에 방문하면 좋다”고 밝혔다.
1997년 4월 개장한 안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은 경북지역 농산물 유통의 중심지다. 여러 품목 중에서도 이 지역 특산물인 사과가 유명하다. 안동시는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방문 때 사과를 선보였고, 이후 여왕의 왕관 모양을 본떠 ‘애이플’이라는 브랜드를 개발했다. 안동농협은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열린 여왕 생일파티에 이 사과를 보내기도 했다. 어머니가 다녀간 길을 따라 도매시장을 찾은 앤드루 왕자는 사과 선별과 경매 시연 모습을 지켜본 뒤 여왕 기념식수 옆에 7년생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는 “20년 전 어머니가 다녀간 길을 걸을 수 있어서 대단한 영광이다. 이 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어머니(여왕)에게 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동시는 6월 중 홍보영상 제작을 시작으로 로열웨이에 문화에 종교, 농촌체험이라는 테마를 입혀 글로벌 관광상품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길을 상징하는 공원을 만드는 방안도 살핀다.
시는 하회마을 등 주요 관광지에 문화관광해설사를 연중 상시 배치하고, 외국어 통역이 가능한 해설사 수도 늘리기로 했다. 권역별 관광지의 시티버스 노선을 조정해 효율을 높이고, 종가음식 등을 접할 수 있는 체험형 관광 콘텐츠도 개발한다. 안동시 관계자는 “여왕 방문 이후 하회마을은 연간 100만명 이상이 다녀가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다”면서 “이번 앤드루 왕자의 방문을 계기로 로열웨이를 국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려 국제 관광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