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의 ‘왝더독 현상’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16부작 정치드라마로 불렸다. 지지율 2%의 후보가 여당의 잠룡들을 하나씩 쓰러뜨린 끝에 대선후보로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선출된 후보가 노무현이었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을 다룬다. 지지율 2%의 꼴찌 후보에서 대선후보 1위, 대통령이 되기까지 노무현의 역전 드라마를 담았다. / 영화사 풀 제공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뜨거웠던 40여일간의 민주당 대선 경선을 다룬다. 2001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한국 정당사상 처음으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한다. 당원·대의원뿐 아니라 일반국민들에게도 문호를 연 국민참여경선은 대선 흥행을 이끌기 위한 승부수였다.
막강한 당내외 지지를 받는 이인제의 대세론은 견고해 보였다. 첫 경선인 제주 경선에서 3위로 가능성을 확인한 노무현은 세 번째 경선이던 광주 승리로 대세론을 허물 발판을 마련한다. 이인제의 고향인 대전·충남 경선에서 대패해 위기에 몰렸지만 강원 경선에서 박빙의 승리를 거두며 흐름을 끊는 데 성공한다. 이어진 대구와 인천 경선에서 대역전극을 마침내 일궈낸다.
경제학의 눈으로 보자면 2002년 경선은 ‘왝더독 현상’의 전형이다. 왝더독(Wag the dog)이란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말한다. 커진 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을 흔드는 일이 잦아지자 주식시장에서 먼저 쓰였다. 예를 들어 선물시장에서 하락장을 예상하면 현물시장도 공공연히 하락 쪽으로 방향을 튼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하락에 배팅하지 않았느냐는 대중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나 기관투자자 같은 큰손들이라면 의도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다. 하락에 베팅한 선물의 만기일이 다가오면 보유한 주식을 내다 팔아 약세장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런 이유로 옵션만기일에는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경우가 많다.
기초자산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파생상품의 시세가 오히려 기초자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왝더독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용부도스와프(CDS)의 경우 해당 채권에 대한 위험도를 반영해야 하지만 때때로는 CDS에 따라 채권의 가치가 결정되기도 한다.
2002년 민주당 경선이 시작됐을 때 노무현 후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인제 외에도 DJ의 적자인 한화갑,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의 김중권, 운동권의 대부 김근태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자산이 있었다.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도전한 200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또 낙선하자 지역감정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그에게 대중이 붙여준 애칭이었다. 노사모가 조직됐고, 그 힘은 국민경선에서 돌풍으로 나타났다.
노무현에게 쫓긴 이인제는 색깔론 카드를 꺼낸다. 노무현 장인의 빨치산 전력을 부각시켰다. “제 장인은 좌익활동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결혼 한참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도 결혼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 자격이 생깁니까?” 이 연설로 승부는 끝났다.
‘왝더독 현상’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증정품을 끼워주는 ‘덤 마케팅’이 있다. 우유 꾸러미에 요구르트를 끼워준다든가 커피 꾸러미에 머그잔을 끼워주는 식이다. 스타벅스의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몸통(커피)보다 더 탐나는 꼬리(다이어리) 때문에 자꾸만 매장을 찾게 만든다. 때로는 가격할인보다 덤을 제공하는 방식이 소비자에게 더 먹힌다. 대통령이라는 권력(몸통)보다 좋은 정치(꼬리)를 꿈꿨던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이 모여서 만든 왝더독 현상이 2002년 경선이었다. 그 꿈은 지금도 유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