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욕망과 사회제도 앞에 무기력한 고3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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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욕망과 사회제도 앞에 무기력한 고3의 앞날

입력 2019.05.24 16:51

  • 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실천교사 미래교육팀장)

고3 담임을 연속으로 10년 정도 했다. 그 사이 아이 둘을 대학에 보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산하 대학진학지원단에서 2년째 대입정보 제공 및 수시·정시 상담을 통해 일선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공교육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교육 현장에서 10년 이상 대학입시와 씨름하며 지냈으니, 아마도 살아온 내 생의 절반이 대입과 밀착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입시 현장에서 긴 세월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오는 동안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바로 공교육이 ‘개인의 욕망’을 어디까지 반영하고 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교육은 도대체 무엇이고,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떤 인재이며, 인재를 어떻게 선발하고 길러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은 공교육 종사자라면 당연히 품고 있는 화두다. 이러한 고민들이 한 아이의 인생 방향을 설계하는 진학지도에서 당연히 반영되어야 할 테고 말이다.

일류대 진학이 최선이 아닌 현실

우리 사회에서 ‘교육현장’은 욕망으로 펄펄 끓어오르는 용광로다. 교육을 받는 목적이 부모세대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라기보다 혹시나 중산층이라는 담장 밖으로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절박한 공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세대가 부모세대가 누린 사회·경제적 지위만큼이라도 누리게 될 수 있는 확률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나눠 가질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 남은 파이를 한 조각이라도 선점하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교육이 사회적 지위 획득, 계층 이동, 그리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라고 믿기 때문에 교육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역할에 대한 담론은 쉽게 무력화된다. 교육을 욕망 실현의 도구로만 보는 관점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는 ‘현실’을 모르는 ‘고상한 헛소리’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욕망과 공포는 대입으로 귀결된다.

학교 현장의 대입지도 현실로 들어와보자. 우리 반에는 25명의 아이들이 있다. 학기 초 상담을 해보면 상위권 대학을 지망하는 아이도 있고, 대학 진학은 마음에서 지우고 취업을 생각하는 아이도 있다. 또 아무 대학이든 갈 수만 있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자신의 장래희망이 어느 정도 정해져 전공을 결정한 경우도 있지만, 전공은 상관없으니 무조건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밝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듯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들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처해 있는 상황이나 취하고 있는 입장의 스펙트럼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고민과 걱정이 있다. 첫 번째가 과연 대학을 나오고 나서 제대로 취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래도 남들보다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건보다 상위 대학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다. 성적이 좋은 아이는 아이대로, 성적이 중하위권에 속하는 아이는 그 아이대로 이 두 가지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묻는다. 대학을 안 갈 건데 그럼 뭐하고 살아야 하느냐고. 그러나 막상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앞으로 무엇을 할지 더 막막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시원한 답을 얻기가 어렵다. 가장 원론적인 대답만이 가능할 것이다. ‘세상에는 일등이거나 일류에 속하거나 뛰어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그들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어떤 직업을 정해야겠다는 초조함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라.’ 그 아이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의 대답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또 다른 아이가 묻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미디어와 관련된 일인데 부모님은 취업 생각해서 자신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간호학과에 들어가라고 한단다.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생각해보면 정말 간호학과에서 버텨낼 자신이 없는데 간호학과를 가지 않는다면 학비 지원은 없다고 하는 부모님 앞에서 선택을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부모님과 더 많은 대화를 해보라고 권하지만 난관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취업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자신의 꿈을 생각하는 아이의 결정이 어디쯤에서 합의점을 찾을지 알 수 없다.

학력 인플레 시대로 접어든 사회

수시상담 중에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난생 처음 방문했다는 아버지가 있었다. 이 대학 정도는 갈 수 있느냐고 서울 소재 상위 10개 대학에 포함되는 어느 학교를 지목한다. 그 대학은 상위 4~5%의 학생들이 가는 곳이며, 정시에서는 전과목에서 틀리는 문제가 최소한 10개 이하여야만 갈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는데, 아이가 대뜸 큰소리로 “아빠, 난 한 과목에서만 10개 넘게 틀려요”라며 평소 해맑은 성격 그대로 대담하게 자기 고백을 한다. 얼굴이 붉어진 아버지는 “이제까지 공부를 어떻게 한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다 결국 이번 입시는 시험 삼아 치를 테니 무조건 그 대학 이상으로 잡고 합격선이 가장 낮은 전공을 찾아달라고 한다. 이런 경우 진학지도는 의미를 잃게 된다. 아이는 오로지 부모의 욕망에 맞춰 불합격이 예상되는 곳에 원서를 접수했다.

이미 우리 사회는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수요 자체가 적었고, 대학 숫자가 지금보다 적었기에 대학 졸업장이 좀 더 빛나던 부모세대와는 다르다. 일류대 졸업장이 취업을 담보해주지 못하며, 학벌의 힘이라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모세대의 사고 속에 학벌은 하나의 커다란 진실처럼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더해 대학은 취업을 준비하는 기관이라는 잘못된 전제까지 더해진다. 교육정책은 결국 각기 다른 이해와 욕구 충돌을 중재하는 기술쯤으로 여기며, 이해욕구의 당사자들은 자기 편에 유리한 정책이 공정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니 대학 진학을 고려하면서 이전보다 더 복잡한 욕망의 메커니즘 속을 헤맨다. 결국 교육과정이 개편되어도, 입시제도가 개혁되어도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이리저리 뒤틀려 종국에는 기이한 모양으로 변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그러했고, 수능 개편안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이 그렇다.

문제는 학교 현장이다. 큰 방향을 잡고 가던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완전한 정착이 뒤로 밀리고, 수능 절대평가가 미적거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부모들은 자신들의 입시만 기억하며 여전히 학벌에 집착한다. 교사는 그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학지도의 방향을 잃는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이라는 비전을 내걸고 학교 현장의 개혁과 혁신을 이끌어야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오히려 대입문제만 거론하다가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에 다시금 무기력을 심어놓았다. 그러는 사이 교사들은 오늘도 그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형체와 목적이 불분명한 욕망과 씨름하고 있다. 그것도 결코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묻기에는 어려운 욕망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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