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해상국립공원의 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거제부터 여수까지 뱃길 300리를 지나며 바라본 한려해상공원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소나무가 죽은 채 서 있는 풍경은 <경향신문>의 보도대로 ‘바리캉으로 머리숱을 파낸 것처럼, 염색약으로 물들인 것처럼’ 흉측하다. 소나무의 에이즈라는 재선충병에 감염되어 소나무 숲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1988년 부산에 상륙한 재선충병은 이 땅의 소나무를 잔인하게 죽였다. 날아다니며 소나무를 공격하는 해충을 막아내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30년 동안 해충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재선충병에 안전지대는 없다. 지난해 경기 포천시, 양평군 등 수도권에서 3만 그루가 넘게 고사했건만 올해 다시 남양주시 일대에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가 나타났다. 녹음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소나무의 ‘갈색 주검’을 보면 왠지 불길한 생각들이 밀려온다.
소나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재선충병만이 아니다. 활엽수들의 대대적인 협공에 소나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리 산야에서는 지금 소나무와 참나무가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성장속도가 월등히 빠른 참나무는 소나무를 간단하게 앞질러 하늘을 장악해버린다. 햇살을 받지 못한 소나무는 서서히 말라 죽는다. 그래서 참나무들이 무성한 숲에는 소나무 주검이 있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숲이 우거질수록 소나무는 숨이 가쁘다. 온난화가 지속되면 침엽수인 소나무가 설 땅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소나무는 또 산불에도 취약하다. 일단 불이 붙으면 인화성이 강한 송진과 솔방울 때문에 나무 전체가 불타오른다. 산불이 나면 소나무 숲은 삽시간에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버린다. 한때 우리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소나무 숲이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20%를 조금 웃돌 것이라고 한다. 소나무가 100년 이내에 한반도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학자도 있다. “소나무로 집을 지었고, 그 속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생솔가지를 꽂았다. 죽으면 소나무 관에 들어가 솔숲에 묻혔다. 이승과 저승을 동시에 지켜줬고,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귀한 나무였다. 소나무는 우리네 시였고 그림이었고 노래였고 이야기였다. 소나무로 배를 만들고, 궁궐을 짓고, 소나무를 태워 철을 만들고, 도자기를 빚었고, 소금을 생산했다. 소나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김택근 <소나무야 소나무야>)
김택근
지금도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경외하는 나무다. 소나무 숲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간절한 기도가 서려 있다. 푸른 솔은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어떠한 풍상에도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의젓하게 서 있는 자태는 늘 외세에 부대껴야 했던 한국인들에게 희망이요, 믿음이었다. 우리네 삶과 꿈이 솔밭 속에 있었으니 소나무는 진정 나무 이상의 나무였다.
앞으로도 소나무는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인가. 누구는 소나무의 몰락이 자연의 순리라고 말한다. 이미 한반도는 소나무가 살기에 불편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산림청은 2022년까지 재선충병으로 스러지는 소나무가 10만 그루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건강한 소나무에 일일이 예방주사를 놓겠다고 했다. 당국의 ‘큰소리’를 믿어본다. 숲속에는 푸른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의 검붉은 신음소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