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도 불만 해소 못해… 누구나 만족하는 제도는 한국에 없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대학입시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대학입시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교육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파고들어가 보면 대학입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러스트 김상민
무지는 불안을 낳는다. 입시와 자녀교육에 불안한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싶어한다. 학원가의 광고전단을 보면 각종 설명회 개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보에 목마른 학부모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학원에서 설명회, 간담회를 개최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학원의 목적과 학부모의 ‘니즈’는 설명회와 간담회를 통해 접점을 찾는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학원도 하는 것을 학교가 하지 않으면 곧바로 비난거리가 되고 만다. 학원 설명회는 학교로 전파됐다. 학교에서 하는 대학입시 설명회다. 필자도 학교 대입 설명회에서 마이크를 단골로 잡아왔다. 단골 마이크맨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학원에는 아예 전국을 다니는 설명회 전문강사가 따로 있다.
수많은 설명회와 간담회 찾는 부모들
수많은 설명회를 들어봤으니 사람들은 이제 입시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학부모들은 여전히 무엇을 알아야 할지, 대학입시가 무엇인지 몰라 어려워한다. 각종 설명회·간담회는 그냥 부흥회로서만 기능할 뿐, 핵심 정보 전달에는 실패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의 목적이 입시정보의 확산에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이유다.
도대체 학부모와 학원, 학교는 모두 무엇을 위해 설명회를 열고, 참석하는 것일까. 또 무엇을 설명하고 전달받고 있는 것일까.
어떤 분야를 잘 모르면 당연히 목소리가 작아지고, 주장의 세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은 무지의 정도와 주장의 강도가 비례하는 속성마저 엿보인다.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계경제에 무리가 가더라도 자녀의 사교육비는 아낌없이 쓴다.
관심은 많은데 그만큼 알지는 못하는 이중성. 결국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의 모순이 대한민국 교육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흔히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이 많아지고, 고등학교 입시가 과열됐다고 비난한다. 특목고의 교육환경이 실제 일반고보다 좋은지 여부는 검증이 어려우니 넘어가더라도, 특목고 학생들의 사교육 실태는 증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A외고는 주말이면 대치동행 관광버스가 운행을 한다. 학교는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적어도 일반계 고등학교가 부실해서 사교육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지방의 자사고나 과학고도 사교육 열풍에서 예외가 아니다.
특목고든 일반고든 역시나 한국 공교육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일까. 국제고에서 이른바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한국 공교육을 비난하는 논리의 균열이 드러난다. 그 좋다는 선진국 교육을 한국에서 받아도 여전히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이다.
모순은 대학입시에 만연한 서열화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중위권은 어디일까? 산술적으로 대학입시에서 중위권은 전체 수능 9등급 중 5등급이 기준이 돼야 한다. 5등급보다 조금 높은 3~4등급의 성적표를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중간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걸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대학이란 말을 쓴다. 하위권 대학은 정말로 하위권이 아니다. 우리의 눈이 실제의 상위권에 만족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서울의 경계선 안에 하위권 대학은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에 서울의 경계선을 약간 벗어난 대학이 있다. 하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학교이지만, 수능 상위 10% 이내에 들어가야 합격권이다. 그 어떤 분야에서도 상위 10% 이내를 하위권이라고 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대학입시에서만 통용되는 분류법이다.
학벌 중요하지 않다면서 입시에 올인
해마다 수능이 끝나면 출제를 담당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언론과 학생, 학부모로부터 ‘동네북’이 된다. 어려우면 불수능,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비판받는다. 무언가 통합할 수 없는 모순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수능 성적표가 배부되면 평가원이 있는 충북의 조그만 마을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탄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선다. 컴퓨터로 스캔해 채점이 되어 나온 점수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단 한 건의 채점 오류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선다형 한 줄 세우기 시험에 대한 비판은 학력고사 시절부터 나온 오래된 레퍼토리다. 누구나 인정할 것 같은 5지선다형 시험 체제의 혁파는 지난해 대입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으로 완전히 깨진 것 같았다. 수능시험으로만 가는 정시 대입 전형을 확대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으로 공인됐다. 그러나 여전히 선다형 시험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적절한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는 비판 역시 끊임없이 나온다. 학교 교육은 5지 선다형에 맞추어야 할까, 선다형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애써야 할까. 지금 학교는 두 요구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현재 대학입시의 난맥,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은 바로 이런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교육과 입시제도가 변화하는 시대를 못따라가고 있다는 말은 절반은 틀렸다. 입시제도가 정확히 현실에 조응해 그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는 매번 바뀌어 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바뀌어 왔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친다는 비아냥을 들어왔을 정도다. 논술이 들어왔고, 미국식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됐고, 서술형 시험도 도입해봤고, 본고사도 부활시켜 봤다. 입시제도를 이리 바꾸고 저리 고쳐도 국민적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이제는 입시 자체에 대한 불만에서 사고의 전환을 이룰 때가 됐다.
더 이상 학벌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시제도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에서 우리는 근본적 모순을 찾아야 한다. 설사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대라 하더라도 더 이상 학벌이 상층 노동으로 진입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대학입시에 올인하는 세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말로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는가? 여기에 동의한다면 이 시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입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만드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해답이 될 것이다.
입시문제 해결에 ‘도깨비방망이’는 없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서 교육과 입시에 대한 모순적 사고 행태를 전환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누구나 만족하는 입시제도는 적어도 한국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