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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사 ‘마일리지 승진제’ 폐지해야

입력 2019.04.22 13:40

  • 정재석 고창초등학교 교사(실천교육 정책팀장)

승진 점수에 얽매여 교장 눈치 보게 되고 교사 본분에 집중하기 어려워

학교폭력 담당부장을 3년간 맡은 적이 있다. 교육경력도 어느 정도 됐고, 승진점수를 보고 부장을 신청했더니 기피업무인 학폭부장에 배정된 것이다. 학폭부장을 하는 동안 학교폭력사안을 다루다보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내가 경험한 학폭부장은 학교폭력사안 조사부터 학교폭력전담기구회의 및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까지 개최해야 했다. 그러다보면 교사라기보다는 경찰의 업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학폭부장은 심지어 배움터 지킴이나 보안관 관리까지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1) 교사 ‘마일리지 승진제’ 폐지해야

방과 후 담당부장도 마찬가지다. 방과 후 강사를 뽑을 때 공고를 내거나 면접까지 방과 후 담당부장이 주관한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방과 후 학교 자유수강권 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지원하는 일까지 하기도 한다. 심지어 중간에 방과 후 학교 수강료를 환불하는 것도 방과 후 부장이 처리한다. 그러다보니 방과 후 부장은 1년 내내 행정으로 바쁜 경우가 많다.

교무부장은 기본적으로 교무실에 상주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를 관리하고 학교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행사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매주 간부회의에 들어가 교감, 교장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 교감 공석 시 교감을 대리해 공문서 결재나 복무 결재까지 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교무부장은 늘 분주한 자리다.

학교는 ‘이미 정치적인 공간’으로

개인적 경험상 이 세 부장들이 학교에서 가장 기피하고 힘든 보직이다. 그러나 나처럼 승진점수를 모으는 교사는 힘들어도 해야 한다. 교감 승진을 위해서는 부장교사 경력 7년이 필요하기도 하다. 거기에 근무평가라는 것도 필요하다. 3년 동안 학교 교사 중에 근무평가 1위를 세 번해야 승진하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승진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은 아무리 바빠도 교무부장 3년은 기본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근무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교장이 부여하는 점수가 크기 때문에 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학교에는 자연스레 침묵하는 교사, 눈치 보는 교사들이 생긴다.

나 역시 그랬다. 교장이 민주적이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을 해도 다음 부장 임명이나 포상에 미칠 영향 때문에 침묵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는 침묵이 곧 동조하는 것이 된다. 혹자는 침묵이 교육의 중립이라고 한다. 하지만 침묵은 고도로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다. 학교는 마이클 애플이 언급했듯 ‘이미 정치적인 공간’이다. 단지 조용하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착각할 뿐이다.

학교에서는 부장회의라는 것을 한다. 부장회의의 주목적은 학교 전체 운영을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목적은 학교장의 의견을 부장들이 중간에서 교사에게 오해 없이 잘 전달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교장, 교감을 비롯해 전 교사가 함께하는 전체회의보다 중간급 회의가 더 활성화되면서 평교사의 의견이 교장에게 전달되는 창구는 더 좁아진다. 비보직 교사에게 의견이 있다면 절차를 밟으라고 말하는 식이다. 중간급 회의는 교장의 지시 하달을 부드럽게 할지는 몰라도 일반 교사들의 건의나 의견은 한 번 거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 자체를 교사들은 비민주적이라고 느낀다. 절차를 밟아서 의견을 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교사와 교장 간 권력의 거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민주적 학교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성과급 점수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무부장-연구부장-학년부장-기능부장-비보직교사’ 순으로 형성된다. 교사가 부여한 점수도 이 순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교사들도 학교가 정해준 순서에 순응한다. 이미 관료제가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료제는 교사의 민주성과 자율성, 창의성을 침해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분야는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 볼 때 수업, 생활지도, 상담이지만 학교에서 소위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는 교사들은 학교 교육과정을 잘 짜는 연구부장이나 학교 행정을 잘 하는 교무부장인 경우가 많다. 이는 교사의 본질적인 전문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학교의 민주화, 교사 전문성 제고 저해

미국의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였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연구부장이 아닌 교감이 직접 짜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는 교감을 ‘커리큘럼 코디네이터’라고 불렀다. 캐나다 학교의 교장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직접 상담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의 학생 상담은 주로 담임교사들이 담당한다. 미국에서 만났던 교사 맥도널드는 교감과 교장이 전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자신은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고, 교감과 교장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라고 설명해줬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외국 교사들이 수행하지 않는 잡다한 행정업무까지 수행한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이 어느 사이에 ‘반(半)행정공무원화’ 되어버린다.

사람이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가르치는 일도 잘 하고, 행정업무도 잘 하는 교사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행정업무를 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더 많은 수업준비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활지도에 신경쓸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마일리지 승진제’는 승진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제도다. 승진을 위해 교사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준비한다. 승진제는 기피업무 배정을 원만하게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기피업무인 학폭부장을 자원한 것도 승진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마일리지 승진제는 기피지역 배치를 용이하게 해준다. 승진점수가 없다면 어떤 교사가 벽지나 섬에 들어가 근무를 하려 할까. 진심으로 원해서 가는 교사들도 있지만 승진점수가 일정한 작용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승진 예측성이 있고, 기피업무와 기피지역 배정에 용이하다고 마일리지 승진제를 유지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승진을 빌미로 교감, 교장이 해야 할 일을 교사가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진에 신경쓰다보니 교사의 전문분야인 수업, 생활지도, 상담에 집중할 수 없다. 또한 교사들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자율성과 창의성도 저해된다. 기피업무를 했다고, 기피지역에 갔다고 해서 교장 자질을 담보할 수도 없다. 기피업무를 맡거나 기피지역에 가는 교사에 대한 보상은 승진이 아닌 수당이나 이동점수 부여방식 등으로 다양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제 교사의 전문성 제고와 학교의 민주화, 교육의 자율성·창의성 신장을 위해 ‘마일리지 승진제’와 과감하게 결별해야 한다. 이별은 늘 아쉽고 아프다. 그러나 도려내야 할 부분은 도려내고 가야 새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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