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조세피난처’로 숨겨놓은 비밀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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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조세피난처’로 숨겨놓은 비밀계좌

입력 2019.04.22 13:39

  • 박병률 경제부 기자

1987년 개봉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 스트리트>는 자본시장을 소재로 한 레전드 영화다.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작전세력과 손잡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 증권브로커를 통해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증권가의 욕망과 탐욕을 제대로 다뤘다.

돈은 신입 주식 브로커가 작전설계자와 손잡고 일확천금을 얻는 과정과 이들의 공모를 파헤치려는 금융당국과의 추격전을 담았다./쇼박스

돈은 신입 주식 브로커가 작전설계자와 손잡고 일확천금을 얻는 과정과 이들의 공모를 파헤치려는 금융당국과의 추격전을 담았다./쇼박스

박누리 감독의 영화 <돈>은 여러모로 <월 스트리트>와 닮아 있다. 돈도 백도 없던 증권브로커가 작전설계자로부터 도움을 얻어 일확천금을 꿈꾸고 그 뒤를 금융당국이 쫓는다는 큰 얼개도 비슷하다. 30년이 지난 만큼 작전은 더 정교해졌다. 작전설계자인 번호표(유지태 분)는 스프레드거래, 프로그램매매, 공매도를 차례로 동원한다. 동명증권 주식브로커 조일현(류준열 분)은 작전을 수행해주고 수십억 원대의 수수료를 받는다. 스프레드거래란 만기일이 다른 두 선물 간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거래다. 프로그램매매란 컴퓨터에 프로그래밍이 된 대로 수십 개의 종목을 대량으로 매수·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크게 벌리는 판이 공매도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사서 갚는 거래를 말한다. 그 사이 주가가 하락하면 큰 돈을 번다.

조일현이 스프레드거래와 프로그램매매를 수행해준 대가로 받은 141만 달러의 돈은 해외 비밀계좌로 입금됐다. 금감원에 쫓겨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던 조일현은 3일짜리 휴가를 떠난다. 그곳은 자신의 비밀계좌가 있는 곳 바하마다.

미국 플로리다주와 쿠바 사이 카리브해에 있는 바하마는 영국연방의 섬나라다.

작전세력들은 조일현의 비밀계좌를 바하마에 튼다. 바하마는 계좌추적이 어려운 조세피난처다. ‘조세피난처(tax haven)’란 법인이나 개인의 소득에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조세피난처는 고객의 계좌정보도 공개하지 않는다. 때문에 재산을 빼돌리거나 탈세하기에 적격이다.

조세피난처는 주로 영국계다. 런던 금융가인 시티를 중심으로 영국령인 저지, 건지, 맨섬, 케이맨제도, 영국에서 독립한 홍콩, 바하마, 싱가포르 등이 ‘거미줄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1920년대 영국 법원이 외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런던 본사 기업에 대해서 세금을 매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뒤 영국 본토와 영국령 해외 영토가 조세피난처로 부각됐다. 1934년 스위스는 은행이 금융소비자의 신원을 노출시키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다. 이후 비밀보장을 내건 조세피난처가 급증했다.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도 20세기 초부터 조세피난처를 제공했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국가마다 다른 조세제도를 골라 이용하는 행위를 ‘조약쇼핑’이라 부른다. 외국에 재산을 숨기는 방식의 조약쇼핑이 처음 등장한 것은 1789년 프랑스혁명 때로 알려져 있다. 귀족들은 수수료를 주고 비밀리에 스위스은행에 자신들의 재산을 맡겼다.

유럽연합(EU)은 한때 한국도 조세회피처로 지정하려고 했다. 경제자유구역 내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이 조세회피를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관련 제도를 폐지했다. EU는 지난 3월 조세분야 비협조지역(EU 조세회피처 리스트)에서 한국을 완전히 제외한다고 밝혔다.

123개국(지난해 10월 기준)은 ‘국가 간 소득이전 및 세원잠식(BEPS)’ 방지를 위한 협약에 서명하고 금융거래정보를 교환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한국과 바하마도 포함돼 있다. 조일현의 비밀계좌 정보를 우리 금융당국이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일현은 비밀계좌를 어디로 옮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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