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제비, 땅에는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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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제비, 땅에는 제비꽃

입력 2019.04.22 13:33

  • 김택근 시인·작가

제비꽃을 보며 제비를 기다려 본다. 제비가 북상한다면 우리 세상이 맑아졌음 아니겠는가. 우리 심성도 맑아졌음 아니겠는가.

제비꽃이 피었다.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있는 모습이 흡사 제비들의 지저귐 같다. 제비꽃이 피면 강남으로 갔던 제비들이 돌아왔다. 하늘에서 제비가 날면 땅에서 제비꽃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봄이 완성되었다.

김기범 기자

김기범 기자

제비들은 정말 ‘제비처럼’ 날렵했다. 제비에게는 날갯짓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제비에게는 비행이란 말이 제격이다.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는 비행은 경쾌하고도 시원했다. 멈춤 없이 날벌레를 낚아채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집집마다 제비집이 있었지만 함부로 허물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옛이야기 <흥부전>이 제비 보금자리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고향 집에도 해마다 제비 한 쌍이 날아왔다.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이 자라서 비행연습을 마치면 함께 강남으로 날아갔다. 제비가 떠나가면 이내 삭풍이 불어오고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은 이듬해 제비들이 봄을 물고 와서야 완전히 퇴각했다.

제비는 산과 들에 피어 있는 제비꽃만큼 흔했다. 어디를 가도 제비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하지만 요즘 제비가 보이지 않는다. 제비꽃이 피었는데도 제비는 오지 않는다. 제비꽃만이 빈 하늘을 보고 있다. 그 많은 제비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생각을 하면 어릴 적(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들녘에서 지켜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벼가 아이들 키만큼 자라면 어른들은 논에 농약을 쳤다. 그러면 제비들이 모여들어 그 논 위를 맴돌았다. 제비들은 허공을 박차고 쏜살처럼(아니 그보다 더 빨리) 내려와 벌레들을 낚아챘다. 그 벌레들은 농약을 뒤집어쓰고 솟구쳐 오른 것들이었다.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불길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역한 농약 냄새가 풍겨온다. ‘사람도 중독되어 쓰러지는데 한갓 제비가….’ 제비가 사라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먹이가 오염되었으니 어찌 무사하겠는가. 어찌 튼튼한 새끼를 낳을 수 있을 것인가.

고향에도 이제 제비는 오지 않는다. 호랑이가 이야기 속에 박혀 있듯이 제비도 <흥부전> 속에 겨우 남아있다. 하지만 제비들이 늦잠을 자던 사람들을 깨우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제비들이 아침을 열었다. 제비가 지저귀면 마을이 평화롭고 건강했다. 이제 처마 밑에 제비가 없으니 고향의 봄은 누가 일으킬 것인가.

그렇다고 우리 땅에 제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주도에 사는 농부시인 정희성은 제비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이렇게 전한다.

김택근

김택근

“정확하다. 제비가 돌아왔다. 오후 6시경 후드득, 봄비 오시길래 바삐 나가보니 내 서슬에 놀란 제비 한 쌍이 어지럽게 교차비행을 한다. 유심히 보니 작년 여기서 새끼를 쳤던 제비 암수가 분명하다. 처마 밑에 넉살좋게 앉아 있는 품새가 영락없다. 제비가 돌아왔으니, 제대로 봄이다. 차나무 순도 볼 만하고 비파나무와 말오줌때 새순이 신록에 가깝다.”

감동이다. 달려가 보고 싶다. 제주도와 섬마을, 그리고 남녘 어딘가에는 아직도 제비가 돌아오고 있다. 생명붙이가 보금자리를 정확히 찾아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고 보니 우리 곁을 떠난 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것들을 떠올리면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련하다. 제비꽃을 보며 제비를 기다려 본다. 제비가 북상한다면 우리 세상이 맑아졌음 아니겠는가. 우리 심성도 맑아졌음 아니겠는가. 하늘엔 제비, 땅에는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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