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독일마을에서 독일 교포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노고와 눈물을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전설이 된다면 독일마을은 영원할 것이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남도의 봄은 절정이었다. 남해 가는 길에 독일마을에 들렀다. 마을은 몇 년 전 모습과는 달랐다. 독일 색을 덧칠한 듯했다. 독일마을은 독일에 파견된 광부, 간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조성한 이른바 ‘교포 정착촌’이다. 독일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전통적인 독일 양식의 주택을 지었다고 한다. 꿈에도 그리던 모국이었으면 한옥을 지어 살아야겠지만 모두 독일식 주택을 지었다. 아마도 독일은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기회의 나라이자 눈물의 땅이었기에 그 시절을 옮겨오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독일마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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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에서 운명을 바꿔보겠다며 광부들은 1963년에, 간호사들은 1966년에 독일 땅을 밟았다. 광부를 지원한 사람 중에는 대학 졸업자도 많았다. 손이 고우면 뽑히지 않을 것 같아 몰래 손등에 깜장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건강하고 똑똑한 아들과 딸 1만8000명이 독일로 떠나갔다.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은 한강에 다리 하나가 달랑 걸려 있을 때 서울을 떠나왔다. 동방에서 온 작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다. 몸집이 큰 독일인들이 착용했던 작업복을 입고 지하 1000m에서 석탄을 캤다. 장비가 무거워 허리가 휘어졌다. 고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무조건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을 청했다.
한국의 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처음에는 청소나 빨래 같은 허드렛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자 손끝이 야무지고 매사에 헌신적인 간호사들은 동방에서 온 천사로 불렸다. 그렇게 돈을 벌어 한국에 보냈다. 그 돈으로 나라에서는 다리를 놓고 공장을 세웠다. 고향집에서는 동생들이 공부를 했고, 아버지는 막걸리를 마셨다.
모국의 대통령이 독일 방문 중에 이들을 만났다. 유독 키가 작았던 대통령 앞에서 한국의 딸들은 그저 눈물만 쏟았다. 대통령도, 수행원도 울었다. 조국은 멀리 있고, 현실은 고달팠다. 그때 그 눈물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눈물로 모국은 살이 올랐다. 독일마을 언덕 위에는 파독전시관이 서 있다. 독일 교포들의 특별한 시간들을 펼쳐 놓았다. 교포들이 써놓은 어록이 눈길을 끈다. 눈물에 젖어 있지만 그 속에 희망이 반짝인다.
‘지하 1000미터 아래서 배웠다. 끝나지 않는 어둠은 없다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다가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힘을 냈어요.’
김택근
정착한 사람 중에는 이제 세상을 뜬 사람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 독일마을에서 독일 교포들이 사라질 것이다. 벌써 많은 주택들에는 내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사라졌어도 독일마을은 더 커지고 관광객은 더 많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의 노고와 눈물을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전설이 된다면 독일마을은 영원할 것이다.
독일마을을 걷다 문득 고향 마을 뒷집의 누나가 떠올랐다. 그 누나도 파독 간호원으로 뽑혔다. 누나가 떠나는 날 마을사람들이 동구 밖까지 나와 배웅했다. 누나는 울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서서 뛰어갔다. 어느 마을, 어느 집에서나 눈물로 그들을 보냈다. 고운 봄날에 떠났지만 그 누님도 지금은 백발이 되어 있을 것이다. 누나는 아직도 세상에 살아있을까. 살아계시면 어디에 계실까. 찬란한 봄날을 보고 있자니 문득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