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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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입력 2019.04.08 15:22

  • 박병률 경제부 기자

극동아시아 마약 시장 ‘화이트 트라이앵글’

1980년 3월 29일 오후 부산 수영구 민락동의 한 호화주택 앞에서 때아닌 총격전이 벌어졌다. 3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한 끝에 검거된 자는 이황순. 부산에서 마약을 대량으로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하던 필로폰(일명 히로뽕) 밀수단의 우두머리였다. 이날 <경향신문>은 그를 ‘초현대식 장비를 갖춘 한국판 마피아’라고 보도했다.

<마약왕>은 197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마약 유통사건의 배후이며, 마약계의 최고 권력자로 시대를 풍미했던 ‘이두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쇼박스 제공

<마약왕>은 197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마약 유통사건의 배후이며, 마약계의 최고 권력자로 시대를 풍미했던 ‘이두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쇼박스 제공

우민호 감독의 영화 <마약왕>은 이황순 검거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1970년대 초 금과 시계를 밀수하다 붙잡힌 이두삼(송강호 분)은 교도소에서 마약 밀수업자를 만나면서 마약에 눈을 뜨게 된다. 그는 부산에서 제작한 필로폰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를 붙여 일본에 밀수출한다. 돈이 되는 것은 다 수출해야 했던 수출보국의 시대. 수출역군이 된 이두삼은 “뽕을 일본에 팔면 애국 아니가”라고 당당히 말한다.

중추신경흥분제인 메타암페타민. 다이닛폰 제약은 1941년 이 약품에 ‘필로폰‘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았다. 필로폰을 일본어로 읽은 것은 히로뽕이다. 필로폰은 먹으면 잠이 안 오고 공포감이 사라진다. 일제는 잠들지 말고 군수공장에서 일하고, 전쟁에서 무섭지 말라고 필로폰을 풀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일본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법으로 필로폰 제조를 금지시켰다. 그러자 필로폰 제조업자들은 가까운 부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총련계 밀수업자가 이두삼을 유혹한다. “부산은 특히 물이랑 공기가 좋아 뽕 색깔이 고와”. 이두삼이 되묻는다. “조선서 만들어가 여기서 팔면 우째 되노?” “금댕이지.”

밀수가 용이하고 품질 좋은 필로폰을 만들 수 있는 부산은 일본 마약업자들에게 ‘니어쇼어링’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란 국내 시장과 가까운 인근 지역에서 아웃소싱을 하는 것을 말한다. 원료(일명 원단)는 대만에서 구해 왔다. 대만(원료)-부산(제조)-일본(소비)으로 이어지는 극동아시아의 마약류 시장이 완성됐다. 이른바 ‘화이트 트라이앵글’이다.

원재료 수입, 중간재 가공, 최종 생산이 각기 다른 나라에서 이뤄지며 부가가치를 만드는 ‘글로벌 아웃소싱’을 글로벌 가치사슬이라 부른다.

2000년대 들어 빠르게 확산되던 글로벌 가치사슬은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약화되고 있다. 경기침체로 자국 산업을 지키려는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고 신흥국의 빠른 임금인상으로 선진국과의 생산비용 차이가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오프쇼어링(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보다는 리쇼어링(해외로 떠났던 기업이 되돌아오는 현상·온쇼어링이라고도 함) 얘기가 더 많이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태국·라오스·미얀마 국경이 접한 산악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도 유명하다. 전세계 헤로인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란·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인 ‘골든 크레센트’는 유럽과 미국의 마약 공급지다. ‘코카인 트라이앵글’도 있다. 콜롬비아·페루·볼리비아 접경지역으로 세계 코카인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1990년이 지나면서 화이트 트라이앵글에는 변화가 왔다. 생산지가 중국으로 바뀌고 한국도 일본과 함께 소비지로 바뀌었다. 중국은 땅이 넓어 숨을 곳이 많고 사정당국의 단속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인건비도 쌌다. 또 동북3성에는 필로폰의 원료인 황마가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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