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 하나만을 베어 넘긴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저 나무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섬이라는 제주도의 명성과 신비감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남녘에서 가시 박힌 소식이 올라왔다. 제주도 비자림로에 서 있는 삼나무들이 다시 잘려나갈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도로 확장공사를 중단한 지 7개월 만이다. 전기톱을 들이댄 무리가 나타나자 이에 맞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달려가 숲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벌목의 현장에서 누구는 곧 잘려나갈 삼나무를 끌어안았고, 누구는 베어 넘겨진 나무에 절을 했고, 누구는 아예 전기톱을 껴안으며 오열했다고 한다.
촬영 이준헌기자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
삼나무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호소가 숲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이런 가슴 시린 장면들이 왜 생명의 섬이라는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의 계산에 따르면 비자림로 확장은 ‘20초 빨리 가려고 2000여 그루의 삼나무를 베어내는’ 공사라고 한다. 시민들을 위하기보다는 개발업자들을 위한 공사라는 생각이 든다. 거액의 공사비를 타냈으니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예부터 우리에게 나무는 하찮은 생명붙이가 아니었다. 부족마다 신목(神木)이 있었고, 성황당 곁에는 위엄이 서린 나무가 서 있었다. 또 마을마다 당산목이 있었다. 당산목이 건강해야 마을도 활기가 넘쳤다. 옛사람들은 나무 하나를 베어 넘기려면 나무 앞에서 제를 지냈다. 나무는 인간을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교감의 대상이었다. 평생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으로 돌아간 이오덕 선생은 이런 글을 남겼다.
“아무래도 감나무가 사람의 기를 받아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사람의 숨소리, 사람 말소리를 들어야 감이 달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사람 소리 들어야 여는 감’이란 말이다. 마치 논의 벼가 ‘사람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고, 그 말이 참말이듯이.”(이오덕 지음 <나무처럼 산처럼>에서)
생각할수록, 쳐다볼수록 나무는 아름답다. 나무가 없다면 초록별 지구는 얼마나 삭막했을 것인가. 비자림로도 삼나무가 있어 아름다운 길이고, 제주의 명물이다. 이 길을 지나면서 사람은 물론 차들도 심호흡을 했을 것이다. 길 위에는 철마다 다른 삼나무들의 노래가 떨어졌을 것이고, 연인들은 삼나무 숲에서 사랑을 고백했을 것이다. 신혼부부들은 삼나무처럼 변함없이 푸르게 살자고 약속했을 것이다.
김택근
삼나무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외래종이라며 벌목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핑계가 해괴할 뿐이다.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 이슬과 바람을 맞고, 우리 하늘을 차지하고 있으면 우리 나무이다. 더욱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말을 듣고 자랐으니 제주도 나무가 분명하다.
숲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 특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를 베는 일은 몇 번을 생각해도 잔인한 행위다. 부디 이제라도 나무들을 향해 귀를 세워보시라. 비자림로에 처음 삼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새겨보시라.
삼나무 하나만을 베어 넘긴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저 나무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섬이라는 제주도의 명성과 신비감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결국 제주도에 톱질을 하는 셈이다. 지금 삼나무가, 아니 제주도가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