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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자비

입력 2019.03.25 15:29

  • 김택근 시인·작가

인간의 손은 서로 껴안기 좋도록 만들어졌다. 서로 맞잡기에, 쓰다듬기에, 손뼉치기에 좋게 생겼다. 달라이라마는 인간의 손에 자비가 스며 있다고 말한다.

남녘에서 꽃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고향 생각이 피어오른다. 이 산 저 산에서 새소리가 마을로 떨어지면 집마다 겨울 외투를 벗는다. 무채색 대지도 일어나 남녘에서 서성거리는 바람을 부른다. 농부들은 그 땅에 힘을 풀어놓는다. 대지와 교감하는 일손은 얼마나 위대한가.

일러스트/김상민

일러스트/김상민

화사한 봄볕에 농부의 일손을 비춰보면 투박하고 못생겼다. 하지만 그 일손만이 봄을 끌어당길 수 있다. 부모의 거친 손을 잡아본 자식들은 가슴이 저렸을 것이다. 손바닥은 갈라져 손금이 보이지 않는다. 농부의 손은 아집이나 오만이 지워져서 지문마저 같아졌다. 모두 그 손이 그 손이다. 그 손으로 농사를 짓고, 그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자식들을 키웠다. 손이 거칠수록 최선을 다했음이다. 그 안에는 어떤 삿된 것도 들어 있지 않다.

모든 것들은 손에서 완성된다. 농사는 물론이요 사랑도 혁명도 손 안에 있다. 또 손에서는 맛, 멋, 향 등이 빚어지고 피어난다. 시작이 머리라면 그 끝은 손이다. 숨이 끊어진 사람은 맨 먼저 손이 풀어진다. 목숨까지도 손이 쥐고 있음이다.

상대가 손을 잡을 때면 그 마음이 전해진다. 사랑하면 사랑이, 고마우면 고마움이, 존경하면 존경심이 전해진다. 손은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음에 없이 손을 잡으면 금방 느껴진다. 미움도 무관심도 손을 잡아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손은 서로 껴안기 좋도록 만들어졌다. 서로 맞잡기에, 쓰다듬기에, 손뼉치기에 좋게 생겼다. 달라이라마는 인간의 손에 자비가 스며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신체구조를 살펴보면 온순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포유동물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인간의 손들은 남을 때리기보다는 껴안기 좋도록 그렇게 만들어진 거리고 저는 농담 삼아 말하곤 합니다. 만일 우리 손들이 때리기 좋게 만들어졌다면 이 아름다운 손가락들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고 뻗쳐 있으면 세게 때릴 수 없기 때문에 권투선수들은 주먹을 쥐어야 합니다. 이 예는 우리의 기본적 신체구조가 자비롭고 온순한 성격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아름답게 사는 지혜>에서)

김택근

김택근

분노한 사람은 주먹을 쥔다. 그러나 주먹을 쥔 손으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주먹은 또 다른 주먹을 불러올 뿐이다. 하늘을 향해 주먹을 흔든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내려왔다. 하지만 두 손을 모아서 기도를 올린 사람들은 사랑과 평화를 얻었다.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이 세상을 밀어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손에는 우주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열심히 일하고 두 손을 모으라고 이른다.

봄볕에는 어떤 살기도 없다. 봄볕을 마시면 까닭 없이 너그러워지고 속절없이 두근거린다. 이렇듯 고운 봄볕이 내릴 때는 주먹을 쥐지 말라. 손을 펼치면 마음도 펼쳐진다.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손을 펴라.

꽃들이 웃고 있다. 벌과 나비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문득 살펴보면 찬란한 봄날에 인간들만 주먹을 쥐고 있다. 자비로운 손을 지녔건만 머리로만 사는 이들이여, 매끈한 손을 부끄러워하라. 부디 그 손으로 손가락질을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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