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던 흰옷은 왜 사라지고 있을까. 하얀 옷을 벗어던지고 유색 옷으로 갈아입으며 우리는 무엇을 버렸을까. 흰색이 사라진 곳에 넘실대는 저 원색들은 무엇일까. 우리 강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1919년 3월1일 덕수궁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군중들.
3·1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뜻깊은 행사들이 펼쳐졌다. 광화문과 종로, 탑골공원과 서대문형무소는 인파로 뒤덮였다. 오로지 ‘만세’ 하나만으로 일제에 맞선 맨손혁명은 세계사에 빛날 쾌거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그날’을 재현하고 함성을 질렀다.
100년 전의 그날을 오롯이 재현해내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얼추 닮은 여러 행사가 많았다. 하지만 도저히 답습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100년 전 그날 탑골공원과 서울 거리는 온통 흰 물결이었다. 모두 흰옷을 입고 만세를 외쳤다. 그런데 100주년 행사장의 국민들은 거의가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다. 거대한 흑색의 물결이 광화문 일대를 뒤덮었다.
우리는 백의민족이다. 민족의 성산도 ‘하얀 머리(白頭)산’이다. 갓난아기에게도 죽은 이에게도 흰옷을 입혔다. 흰색은 태양빛이며 불멸의 색이었다. 하늘과 땅을 숭배하는 민족에게 흰색은 귀신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신령스러움을 담고 있다. 그래서 특히 제의를 거행할 때는 모두 흰옷을 입었다. 그래서인지 임금들은 백성들이 하얀옷 입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려, 조선시대 여러 왕이 흰옷 착용을 금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잘 지키지 않았다.
전북 부안군에는 해발 47m의 백산(白山)이 있다. 비록 야산이지만 역사 속에서는 큰 산이다. 동학혁명 때 농민들이 모여들어 산 전체가 온통 하얗게 물들어 그리 이름 붙였다. 흰옷을 입은 농민들이 죽창을 들어서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竹山)’이었다.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있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100년 전 한국에 왔던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쓴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속에 수록된 사진을 보면 백성들은 온통 흰옷을 입고 있다. 그는 백성들의 옷차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다못해 신발까지도 흰색이었다.’ ‘조끼, 외투, 오버코트 등 온통 흰색 일색으로 층층이 껴입는다.’ ‘군중들도 눈부시게 흰옷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마치 수만 명의 군대를 방불케 했다.’
김택근
어릴 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운동회나 장터에 가면 온통 흰 물결이었다. 하얀 고무신에 아낙들의 머릿수건도 흰색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하얀 와이셔츠를 깨끗이 빨아 다림질하는 것이 아내의 중요한 내조였다. 속옷도 하얀 팬티에 하얀 셔츠를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전철 안에 앉아 있는 승객을 보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사람들을 보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무리를 보면 문득 놀라게 된다. 온통 검은 옷차림이다. 백의에서 흑의로, 우리는 백색의 나라에서 흑색의 나라로 옮겨왔다. 이제 흰옷은 ‘별난 옷’이 되어버렸다. 평상복으로는 아무도 입지 않는다. 우리네 옷장에 흰옷이 없다.
그렇게 사랑받던 흰옷은 왜 사라지고 있을까. 하얀 옷을 벗어던지고 유색 옷으로 갈아입으며 우리는 무엇을 버렸을까. 흰색이 사라진 곳에 넘실대는 저 원색들은 무엇일까. 우리 강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혹시 하얀 우리네 심성도 변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