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며 흘러야 붙박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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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며 흘러야 붙박이별이다

입력 2019.03.04 14:41

  • 김택근 시인·작가

우리 마음속에도 북극성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빛나는 별, 변함없이 빛이 되어주는 사람. 가끔 아버지를 생각한다. 요즘처럼 봄볕이 기특하거나 가을볕이 고우면 ‘들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사진 김영민

사진 김영민

‘북극성은 붙박이별이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그래서 떠돌아다니는(비록 정한 궤도를 따라서지만)

뭇별에 견줄 때 북극성은 절대(絶對)가 된다. 북극성은

절대로 자리를 움직이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북극성은 과연 절대한 붙박이별인가? 아니다! 만일 그것이 절대로 한 자리에

붙박혀 있다면 자전에 공전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구에서 볼 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

북극성이 절대한 붙박이별인 까닭은 그것이 절대로

한자리에 붙박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아무개 지음 <길에서 주운 생각들>에서

북극성은 지구인들에게 붙박이별이다. 붙박혀 있지 않아서 붙박이별이 되었다. 북극성은 지구와 함께 깜박거리며 지구와 함께 흐르고 있다. 어쩌면 지구를 가장 사랑하는 별인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 속에도 북극성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한자리에서 변함없이 빛나는 별, 변함없이 빛이 되어주는 사람. 그렇다면 나를 향해 반짝이는 별은 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변함없이 빛을 주는 사람은 내 주변을 쉬지 않고 돌고 있을 것이다.

가끔 아버지를 생각한다. 요즘처럼 봄볕이 기특하거나 가을볕이 고우면 ‘들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말이 없어도 말이 되어주던 아버지. 돌아보면 아버지가 내게는 북극성이었다. 아프거나 두려우면, 또 상황이 급하거나 궁하면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듬직한 산이며 드넓은 바다였다. 천둥소리가 집을 흔들고 번개가 하늘을 가르는 여름밤에 마루에 앉아 태연하게 담배를 태우시던 아버지.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 새벽에 홀로 일어나 군불을 지피던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 나올 데가 없는 형편임에도 새 학기가 되면 어김없이 등록금을 마련해주시던 아버지.

김택근

김택근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늙었다. 어느 날 살펴보니 아버지 모습이 참으로 남루했다. 힘을 모두 쏟아내고 힘줄만 남은 손으로 낫질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가을걷이를 끝내고 가을 끝에 묻히셨다. 무덤 앞에 엎드리니 아버지 앞의 나는 참으로 작고 초라했다. 나는 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난 적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다시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한시도 멈춰 서지 않았다.

아버지도 천둥치는 그 밤이 무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식들이 있기에 무서움을 삼켰을 것이다. 아버지도 우리처럼 누군가를 찾아가 돈 앞에 굽신거리는 게 죽도록 싫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식 때문에 비굴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북극성이 되었을 것이다.

제자리를 지켰던 아버지는 영원한 북극성이었다. 나는 천둥치는 무서운 밤에 눈앞의 번개를 보며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지나온 세월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자식들보다 항상 먼저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자식들의 눈높이에서 반짝거리고 있을까. 아이들이 나를 절대(絶對)로 알고 있을까.

나는 자식들에게 북극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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