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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 야만의 시간

입력 2019.02.25 14:41

  • 김택근 시인·작가

요즘 남과 북이 서로 합의한 대로 전방의 GP들을 철거하고 있다. 이제 그 GP 안에 있었던 야만의 시간들도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다.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사진 공동취재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사진 공동취재단

“1969년 4월 5일 토요일 맑음.

김 중사와 지뢰지대 인수인계를 했다. GP 일대와 골짜기를 둘러보고 그가 매복하다 매설한 지뢰지대에 들어섰다. 순간, 쾅쾅쾅, 김 중사가 허공에 떠올랐다 떨어지면서 지뢰가 연발로 터졌다. 김 중사는 지뢰밭 한가운데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흙덩이를 뒤집어쓰고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임시 GP장으로 따라왔던 박 소위가 시신을 수습하러 한 발 옮기는 순간 다시 지뢰가 터졌다. 박 소위를 몇 걸음 옮겨놓고 어깨로 부축한 채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워커 뒤축이 떨어져 나가고 발뒤꿈치가 뭉개져 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여기서 끝이군요. 감각이 없네요’ 하며 하얗게 웃었다.

그를 들것에 실어 보내고 나는 다시 지뢰밭으로 돌아왔다. 정신 차리려고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뢰 터진 자리든 아니든 확인, 확인하고 대검으로 더듬어 나가다 지뢰 터진 곳에서 지뢰 세 발을 제거한 뒤 김 중사를 둘러업고 나왔다. 팔은 덜렁거렸고 발뒤꿈치는 사방으로 갈라진 채 흰 뼈가 드러났고 파열된 가슴에선 피가 쏟아졌다. 다시 강 소위, GP장 대리근무하러 GP에 들어왔다. 나는 여기서 온전히 살아나갈 수 있을까?’ (시인 신대철의 <극지 일기>)

1969년 소위로 갓 임관한 신대철 시인(1945~)이 비무장지대 내의 감시초소(GP)에서 벌어진 일을 이렇듯 일기로 남겼다. 비무장지대 내에 있으니 경계병들도 비무장이 당연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온갖 화기들을 들여놓고 주위는 온통 지뢰밭이었다. 그 지뢰를 밟아 죽는 것은 적이 아니었다. 아군이었다.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지뢰를 뿌렸다. 누군가 죽어나가면 또 누군가를 투입했다. 적만 넘어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말만 휴전이었지 전쟁이었다.

나 또한 최전방 GOP에서 근무했다. 육안으로도 북한군이 훤히 보였다. GOP부대는 철책을 지키는 게 주업무다. 낮에는 자고 밤에 보초를 섰다. 남과 북은 서로 노출되어 있었다. 매복해 들어가 조준사격을 하면 누구나 죽어야 했다. 고참들은 언제 무덤이 될지 모르니 경계초소를 깨끗이 청소하라고 했다.

김택근

김택근

발목지뢰에 다리를 잃고 울부짖는 사병을 목격했다. 병사가 죽어도 기사 한 줄 나지 않고, 사망통지를 받은 부모들은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남과 북만 있을 뿐 우리는 없었다. 나보다 10년쯤 전에 GP에서 근무했던 신대철 시인의 일기는 ‘흰 뼈를 드러낸 채’ 그날을 증언하고 있다. 당시는 서로의 대형 스피커에서 쏟아졌던 방송대로라면 북쪽은 적색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 남쪽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였다. 시인은 방송을 들으며 또 이런 일기도 썼다.

‘우린 서로 앞잡이끼리 비무장지대에서 완전무장하고 총을 겨누고 있다. 이념을 가져도 버려도 민족의 적. 국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적을 인수받아 밤낮으로 적을 향해 심리전을 펼치는 남북 GP들.’

요즘 남과 북이 서로 합의한 대로 전방의 GP들을 철거하고 있다. 이제 그 GP 안에 있었던 야만의 시간들도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날의 파편을 박은 채 아직 피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증오와 광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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