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킹덤>을 시청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한국 드라마는 어떻게 가야 하나’라는 걱정이었다. <킹덤>은 ‘소문난 잔치’에 걸맞은 성찬이었다. 드라마 속 배경은 15~16세기 조선이지만 극 중 위정자들의 위선을 통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국정농단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권력에 대한 탐욕과 민초들의 배고픔은 극의 주요 소재인 좀비를 통해 형상화했다. 고요한 조선의 풍광을 담은 세련된 영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와 대조적인 빠른 전개로 몰입도를 높였다. 주연배우들을 비롯, 좀비를 연기한 40여 배우들의 열연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투자와 플랫폼은 화룡점정이다. 넷플릭스가 <킹덤>에 투자한 금액만 200억원. 회당 15억~20억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고 자사 플랫폼을 통해 전세계 190개국에 <킹덤>을 선보였다.
물론 <킹덤> 한 편만으로 국내 드라마가 모두 망한다고 걱정하면 호들갑으로 비쳐질 수 있다. 당장 <킹덤>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 가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국내 가입자 수와 자체 시청률을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정책을 고수한다. 시즌2 제작에 들어갔다는 소식과 영화 정보사이트 IMDB에서 평점 8.8점을 받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해외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유추할 뿐이다.
하지만 국내 드라마의 안일하고 후진적인 제작 시스템은 걱정을 살 만하다. KBS2 <태양의 후예>의 성공으로 각광받았던 사전 제작 드라마는 몇몇 작품의 시청률 참패 이후 정착이 요원해졌다. 한 배우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어떤 배경을 지닌 인물인지, 주변인들과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는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완성된 대본으로 출발했다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분명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에서다.
드라마 제작 편수가 늘어나면서 제작비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하향평준화된 작품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 채널, 종합편성채널까지 전파를 통해 방송되는 드라마만 1년에 50편이 넘는다. 각종 웹드라마까지 합치면 100여편이 넘는 실정이다. 하향평준화된 드라마는 인터넷 어뷰징 기사처럼 시청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간다. 지상파 채널의 위기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0대가 웹드라마 <에이틴>에 열광하고 기성세대가 JTBC의 <SKY캐슬>로 대동단결한 사이 지상파 채널 미니시리즈는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나마 고무적인 건 <킹덤>을 통해 한국 드라마의 위기와 더불어 경쟁력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잘 만든 드라마는 충분히 ‘국뽕’에 취해도 된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제 할 일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넷플릭스가 좀비처럼 한국 드라마 생태계를 파괴하지 못하게 감시하면서도 전세계에 촘촘히 망을 구축한 이들의 플랫폼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