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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 고통을 유머의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

입력 2018.12.10 15:37

  •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성숙한 사람만이 자신의 고통을 소재로 웃을 수 있다. 자신이 힘들고 괴롭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난 후에는 승화를 해야 한다. 승화는 그 아픔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그 아픔을 소재로 웃을 수 있게까지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8년도 이제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어떤 이들은 ‘웃을’ 일이 더 많았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울’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영화 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영화 <국가대표 2>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어느 누구도 한 해를 보내며 다양한 감상에 젖지 않겠느냐마는 아마 중년의 가장들은 더욱 많은 상념에 젖을 것이다.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었을 것이다. 또 자랑스러운 일도 있고, 다시 들추기 싫은 부끄러운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도 미처 말 못하고 혼자 가슴속으로 삭여야 했던 많은 일들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한 해를 보내면서 웃도록 하자. 그리고 가족들을, 그리고 친구들을 웃기자. 더 이상 ‘망년(忘年)’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는 ‘송년(送年)’을 갖도록 하자.

망년과 송년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자 ‘망(忘)’은 ‘망하다’ ‘달아나다’ ‘죽다’ 뜻을 가지고 있는 ‘망(亡)’ 자와 마음을 뜻하는 ‘심(心)’ 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망년’이 아니라 ‘송년’을 하자

그렇다면 ‘망(忘)’은 “망하거나 죽을 것 같아 달아나고 싶었던 것을 마음속에서 죽여서 잊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한 해를 뜻하는 연(年)을 붙이면 ‘한 해 동안에 있었던 나쁜 일들을 마음속에서 죽여서 잊는 것’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있는 괴롭고 슬픈 일들은 죽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맞을 수 있을까? 물론 가까운 친지들이랑 모여 가볍게 술 한잔 나누면서 환담을 하는 과정에서 괴로웠던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 또는 나를 힘들게 했던 당사자를 망년회를 기화로 다시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회포를 풀 수 있다.

하지만 술기운을 빌려서, 또는 한 해를 보낸다는 감상에 젖어서 슬프고 괴로운 일을 잊을 수 있을까? 물론 슬픈 일을 잠시나마 피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내일이면 다시 태양이 떠오르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시작된다. 달력의 해가 바뀐다고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진정으로 괴롭고 슬픈 일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극복하는 것이다.

극복하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슬픈 일을 당해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곧잘 ‘잊어라’고 조언한다. 물론 옆에서 보기에 안쓰럽고 딱해서 위로해주려는 애틋한 마음에서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잊을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잊을 수 있었다면 본인이 이미 잊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슬프거나 괴로운 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힘들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극복하는 것은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내는 것이다. 물론 잊을 수만 있다면 잊는 것도 극복하는 한 방편일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이나 슬픔은 잊히지 않는다. 아니 쉽게 잊을 수 있다면 사실 그 고통은 그렇게 처음부터 심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통은 도망가거나 잊을 수 없다. 고통은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도망갈 수는 없다. 다만 술이나 약물에 의해 잠시 도망갈 수는 있다. 하지만 다시 직면하게 되면 더욱 고통스럽게 된다.

고통을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고통을 직면하고 자신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난에 처해서 슬픈 것은 약한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고통을 직면하고 인정하기보다는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교육받아 왔다. 하다못해 ‘우는 것’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산타할아버지도 우는 애에게는 선물을 안 준다는 노래까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을 감추거나 방어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지적하거나 웃음거리로 삼으면 불쾌해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아마도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나서서 심하게 방어하고 공격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가지고는 얼마든지 웃을 수 있지만 자신의 고통을 아무 방어 없이 웃음의 소재로 만드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웃으며 보내는 2018년

유머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고통을 마치 남의 고통처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아무리 진한 공감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고통만큼 아프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자기객관화’라고 부른다. 자신을 객관화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것처럼 입장이 바뀌게 되니 비교적 쉽게 자신의 고통을 웃음의 소재로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유머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웃음이고 유머이다. 유머는 단지 재치로 다른 사람을 웃기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유머는 고통스러운 것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스런 감정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웃음의 소재를 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것은 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성숙한 사람만이 자신의 고통을 소재로 웃을 수 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 보통 짜증을 내거나 울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감정을 소재로 웃는다는 것은, 더욱이 그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을 웃음의 소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만이 자신의 고통을 소재로 웃을 수 있다. 자신이 힘들고 괴롭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난 후에는 승화를 해야 한다. 승화는 그 아픔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그 아픔을 소재로 웃을 수 있게까지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아픔을 소재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이다.

금년에는 더 이상 ‘망년’을 하지 말자. 한 해를 돌아보며 괴롭고 슬펐던 일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때 힘들었었다는 것을 솔직히 받아들이자.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극복할 수 있다. 감추거나 피하면 계속 그 괴로움을 마음속에 감추고 살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는 더군다나 감추거나 숨기지 말자. 그리고 그 아픔을 소재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하자.

그리고 웃도록 하자. 즐거운 일이 있으면 웃는다. 하지만 웃다보면 즐거워진다. 그리고 괴로움 속에도 얻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조상들도 고통스럽고 힘든 일은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렇기에 우리는 풍부한 해학과 풍자를 가지게 되었다. 가난한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와서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 지혜를 가진 민족이 되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는 집에 만복이 깃든다. 가장이 먼저 웃도록 하자. 떠나는 2018년을 웃음으로 ‘송년’하고, 다가오는 2019년을 기쁘게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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