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내 안의 두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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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내 안의 두 마음

입력 2018.12.03 14:13

  •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우리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이미 익숙한 것만이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한다. 익숙한 것은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이고 그래서 겉으론 편안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면의 불편함을 알 수 있다.

오늘도 김씨의 행동을 보면서 이씨의 마음속에서 한 목소리가 충동질한다. “저런 바보 같은 말을 하다니. 다시는 저런 말 못하게 이번에도 초장에 제대로 막아야 돼.” 하지만 곧 다른 마음이 조용히 타이른다. “너무하는 것 아니야. 그래도 매너 있게 해야지.”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단 강하게 밀어붙여 상황을 정리해야지 안 그러면 힘들어져. 너 김씨를 몰라서 그래?”/ “그때랑 지금은 다르잖아.”

“사람 마음은 늘 같아. 그때도 세게 나가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까지 사람들이 날 무시했을 걸.”/ “아무리 그래도, 뒤에서 사람들이 너를 뭐라고 하겠니? 잘 생각해봐.”

가슴속 깊은 구석 과거의 아픔

“사람들 말이 뭐가 중요해? 이번 상황 정리가 끝나면 이젠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할 걸.”/ “후회하지 않겠어?”

“나중에 점잖게 사과하면 돼!”

이씨의 두 마음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늘 하던 대로 당당하다. 오늘도 ‘강하게 밀어붙이자’는 목소리가 기어코 이긴다.

“저런 매너도 모르는 무례한 자식은 혼 좀 내야 되는데!”/ “어른들이 싸우면 안 되지. 참아야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잖아.”/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들었잖아. 잘 알면서 왜 그래.”

“그럼 지금까지처럼 싸우지 않고 속으로 무시하면 되겠네.”/ “상대방을 무시하면 안 되지. 사랑해야지.”

“저런 매너 없는 인간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니? 좋아. 사랑하는 척하고 지내지 뭐.”/ “사랑하는 척이라니…, 그렇게 가식적으로 살면 안 되지. 사랑할 거면 진심으로 사랑해야지.”

“알았어, 알았어!”

김씨 역시 이씨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두 목소리가 티격태격한다. 그러곤 늘 하던 대로 오늘도 ‘평화롭게 사랑하며 살자’는 목소리가 이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밀리지 말고 큰소리를 내자’는 목소리는 또다시 밑으로 밀려난다.

두 사람이 만나면 항상 이런 식이다. 이씨는 늘 김씨의 별 대수롭지 않은 행동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거나 나무란다. 그러면 김씨는 속으론 화를 내지만 별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알았다’는 빈말로 그 자리를 모면한다. 그럭저럭 두 사람이 만나면 늘 이렇게 맥이 빠지지만 그런대로 질서가 있다.

상황이 끝나고 이씨의 마음에도 김씨의 마음에도 석연치 않는 여운이 맴돈다. 둘 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어린 시절 우리를 압도했던 사건은 때로는 감동으로 때론 상처로 오랫동안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그리고 대인관계를 맺는 우리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았던 감정은 그와 비슷한 상황을 맞았을 때 과거의 기억이 더해져서 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오지만,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은 깊은 상처가 되어 자동적으로 회피하며 잊으려 애쓰며 산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들은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고 숨어 있을 뿐이다. 어디쯤 마음 깊은 곳에 은둔해 있다가 과거의 쓰라린 경험과 비슷한 상황을 발견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친 날갯짓을 치며 누군가를 위협한다. 당혹스런 순간이다.

불현듯 이씨의 마음속으로 한 가닥 쓰라린 모멸감이 파고든다. “야 인마, 너 오래전에 사람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멍청한 말 했다가 엄청 창피하고 무안했던 녀석이지?”

“괜찮아. 잘못해도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 그때 누군가 어린 내가 다시 말할 수 있도록 조금만 옆에서 손잡아 줬으면 좋았을 텐데 모두들 비웃고 날 무시했었지. 그 순간 난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을 찾고 싶었어. 그 후 지금까지 다시는 창피해서 쥐구멍을 찾지 않으려 얼마나 목소리를 키우고, 무시당하지 않으려 얼마나 발버둥쳤던가. 그래서 나는 멍청한 사람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어. 몹시 불쾌한 뭔가를 연상시키는 그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어.” 이씨의 눈에 회한의 눈물이 맺힌다.

김씨에게 가해졌던 쓰라린 경험 역시 그가 꼭 풀고 싶은 숙제다. 김씨는 여러 형제들이 있는 집에서 성장했다. 어렸을 때 동생과 다투면 아버지는 꼭 장남인 김씨를 가혹하게 나무랐다. 종종 ‘잘못했다’는 말을 할 때까지 심할 정도로 매질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김씨에게 ‘맞서지 말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물러서자. 그것이 잘 사는 방법이다’라는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게 했다.

어른이 돼서도 김씨가 뭔가 부당한 요구에 맞서려고 할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 그를 막아서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는 그날도 그를 맥없이 돌아서게 만들었다.

“야, 너는 진짜 네가 하고 싶은 걸 한 적이 있기나 하니? 늘 누군가의 말을 듣고 따르느라 참 속 터지고 짜증났겠다. 보는 나도 한심하고 답답하다.” 김씨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서러움이 밀려오며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인다.

시간이 지나자 이씨의 마음에도 김씨의 마음에도 알 수 없는 분노가 밀려온다.

“도대체 누가 늘 내 곁에 붙어서 내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이젠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다구. 제발 더 이상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마. 난 지금도 여전히 무섭다고!”

우리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이미 익숙한 것만이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한다. 익숙한 것은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이고 그래서 겉으론 편안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면의 불편함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나의 갈증이 도사리고 있다. 내적 갈등이 일렁인다.

때로는 인식하는 것조차 싫었던 감정들이 꿈틀거린다. 과거의 아픔을 건드리니 짜증나고 불편한 나머지 가슴속 깊은 구석에 꽁꽁 처박아 놓은 것들이 들썩인다. 없어지지 않고 숨죽여 있었던 감정들이 냉장고 저 구석에서 냄새 피우며 썩어 가는 음식물처럼 끄집어내기를 기다린다.

“괜찮아. 잘못해도 괜찮아. 실수는 잘하려는 길목에 항상 있는 거야. 다시 하면 돼!”
“괜찮아. 맞서도 괜찮아. 지금 너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이야. 싸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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