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아버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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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아버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입력 2018.11.19 14:17

  •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아버지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지요. 늘 당신 멋대로 살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다가 말년엔 쓰러져서 자식들 사이도 갈라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요. 아니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얼음썰매장에서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아버지와 아들이 얼음썰매장에서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허름한 중국집에 아버지와 아들이 앉아 있다. 테이블을 앞에 두고 각자 딴 곳을 쳐다보며 말이 없다. 짜장면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천천히 나무젓가락을 집어들고 다 먹을 때까지 별다른 얘기 없이 부자는 그렇게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운다.

특별할 것도 없는 TV 속 화면에 김씨의 마음이 울컥한다. 그 이후 이야기들은 그에게 하나의 그림에 불과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야릇했다.

“그 순간, 나도 저렇게 아버지와 음식을 마주하고 앉으면 어떨까. 화면에서처럼 그냥 별말은 안 해도 아버지와 한 공간에 머무르면 어떨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당황스러웠겠어요.”

“그럼요. 평소에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마음이 훅 올라와서 순간 ‘이게 뭐지?’ 했어요. 아버지와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거든요. 자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결혼해서 이렇게 제 나름대로 가정을 이루며 사는 동안 아버지와 한 공간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TV 속 화면에서 마주한 아버지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낯선 이방인이었다. 아버지가 도움은 안 줘도 좋으니까 그의 삶에 끼어들지만 말라는 마음이 더 컸었단다. 그런 아버지가 생뚱맞게 TV 속 화면을 통해 그에게 훅 다가왔다. 아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었는데 예전의 아버지처럼 제멋대로 그를 찾아와서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도대체 어쩌라고…. 그의 마음이 며칠째 혼란스럽다.

“돌아가신 지 오래 됐어요. 거의 잊고 살지만 가끔씩 떠오를 때도 있지요. 특히 돌아가신 말년에 제 행동을 생각하면 외아들로서 미안한 마음이 좀 있지요. 그러나 아버지와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일부러 고향과 대척되는 곳으로 도망가 살았어요.” 그의 투박한 얼굴 위로 굵은 눈물이 흐른다. 감은 두 눈과 가슴이 일렁인다.

“…….”

긴 세월 그와 만나는 동안 나는 그저 곁에 머물렀다.

“그때는 아버지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지요. 늘 당신 멋대로 살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다가 말년엔 쓰러져서 자식들 사이도 갈라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요. 아니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 기대는 것도 싫고…. 제가 참 나쁜 놈이지요.” 얼굴을 감싼 한쪽 손가락 사이로 계속 눈물이 흐른다.

김씨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차라리 없으면 좋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아버지란 꿈에라도 보고 싶지 않았다. 말년에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고향의 누이들이 돌보다 아들인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왔을 때 외아들인 그는 외면했단다. 내 가족을 지키고픈 가장으로서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 버렸다. 그래서 혹시 그렇게 빨리 돌아가신 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제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는 걸 알아요. 저도 자식을 키우는데 끝까지 아버지를 모시지 않았다는 마음에 혼자 괴로웠어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셨을 때 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될 것 같아 두려웠나봐요. 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컸지요.”

“그동안 누구한테 속 시원히 말도 못하고 혼자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제가 누구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나요. 다들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죠. 더군다나 제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약사로서 막상 제 아버지를 방치했으니….”

“다른 사람의 생명은 돌보면서 내 아버지를 못 돌봤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었군요.”

“네, 그래서 나름대로 노인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날 갑자기 음식을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을 보면서 제 마음이 이상한 거예요.”

“혹시 어떤 마음이었나요?”

“글쎄요.” 그가 생각에 잠긴다. “아마, 나도 아버지랑 그렇게 밥 한끼 먹으면 좋….” 한참 생각 끝에 나온 말에 그가 더는 잇지 못하고 눈이 붉게 충혈된다.

분노와 죄책감 아래 숨겨둔 그리움

김씨는 이 불청객 같은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단다. 그가 얼마나 아버지를 피해서 멀리 도망갔었는데. 행여 한 번씩 드는 죄책감마저도 예전에 가족들을 괴롭혔던 생각을 하며 흔들어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는데. 도대체 며칠째 자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이 기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버지에 대해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올라왔나봐요. 마음이 어떠세요?”

“그리움이라… 참, 그 비슷한 것 같네요. 제 안에 이런 마음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놀랍고 어색하겠어요. 혹시 또 다른 마음이 있다면 더 말해줄 수 있나요?”

“참 스스로 어이없지만 이제는 아버지께 중국요리 한 번 대접하고 싶고…, 목욕탕에도 같이 가고 싶고…, 제주도라도 여행 한 번 모시고 가고 싶고…. 단 한 번도 아버지랑 여행간 기억이 없어요.” 말을 이어가는 동안 눈물이 계속 그의 뺨을 타고 내린다.

분노와 죄책감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던 김씨의 마음 밑에 아련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 그리움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안 된다고 스스로 막았다. 나약한 그런 마음은 그가 지금까지 버티며 지켜왔던 것들을 잃게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랑 정말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어떠세요?”

“그랬나 봐요. 말도 안 돼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 제가 소도시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는데 힘겹게 약 사러 오는 노인들을 많이 대해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씻고 싶었는지 유독 노인들에게 잘합니다. 스스로 그렇게라도 하며 위로하고 싶었나봐요.”

“그동안 죄책감이 컸군요. 이제 막상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만나니 어떠세요?”

“어색하긴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죄책감도 제 안에 있고,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네요.”

우리의 마음은 참 요상하다. 참 여러 겹이 있다. 부정적 감정 밑에는 늘 긍정적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싫은 사람에겐 습관적으로 싫은 감정만 있다고 착각한다. 또한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부정적 감정을 없는 척 스스로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진솔하게 마주할 때 한 발짝 더 상대에게로 다가설 수 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을 떠난 어떤 에너지와 같다. 그래서 안전한 방법으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때 긍정의 마음을 만나고 비로소 우리 마음 밑바닥에 샘물처럼 흐르는 ‘잘 지내고 싶은’ 본래 선한 내 마음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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