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내가 무수히 많은데 언제부턴가 습관적으로 보는 모습만을 자신으로 착각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 있음에도 늘 익숙함을 고집한다.
인천시 남동구 인천대공원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창 너머로 들어오는 10월의 햇살이 참 따뜻하다.
무더웠던 여름 내내 드리워진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그곳의 창밖 풍경은 벌써 하나둘씩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시퍼렇던 잎사귀들이 노랑, 갈색, 때론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언제 저렇게 변했을까 참 자연이 오묘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 불타는 태양 아래서조차 꿋꿋하게 시퍼런 잎들을 자랑하며 우리 눈과 몸을 보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벌써 따뜻한 색채로 또다시 우리 눈과 마음을 호강시키다니. “나무야 나무야, 네 안에 네가 몇이나 있니?” 푸르름을 마음껏 자랑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상대의 모습을 품어주는 단풍이 든 모습은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약속시간에 꼭 맞춰 그녀가 왔다. 오늘도 단정한 모습이다.
“너희들이 내 마음을 알기나 하냐?”
“어떻게 지냈어요?”
“요즘 마음이 좀 복잡했어요. 왜 저는 늘 이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힘들었나 봐요. 어떤 면이 가장 힘들었어요?”
“마음이 자꾸 이렇게 저렇게 심란해요.”
“아, 마음이 안정됐으면 좋겠는데 요동쳐서 힘들었군요.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니요. 차라리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별일도 없는데 이래요. 저는 한평생 우유부단하게 남의 눈치만 보며 바보같이 살았어요.”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맘에 들지 않는단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차분해 보였다. 더군다나 시간 개념도 정확하고 단정한 모습이라 그녀의 마음속 동요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모습이 다소 의아했다.
“직장 동료들은 저를 굉장히 착실하고 얌전한 사람으로 봐요. 사실 저는 그런 얘기들이 듣기 거북하고 싫어요. 저를 몰라서 하는 얘기잖아요.”
“불편하고 답답했겠어요. 그러면 본인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렇게 착하지도 조신하지도 않아요. 다만 겉으로만 그렇게 행동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에요. 사실 저도 다른 사람 뒷담화도 하고 싶고, 속으로 다른 사람을 요리조리 얼마나 비판하는지 몰라요. 상대방의 허점들이 금방 금방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이런 제 모습을 동료들이 알면 아마 놀라서 실망하고 욕할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견디셨어요. 더군다나 나를 좋아하는 동료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할 거라 생각하면 얼마나 민망하고 괴롭겠어요.”
“네, 그러니 맨날 속으로 ‘너희들이 내 마음을 알기나 하냐?’는 식으로 비웃고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지내니 이런 제가 가증스럽기도 하고 아닌 척하고 사는 자신이 못나고 바보같이 느껴져요.”
“죄책감도 들고 자책도 되니 혼란스럽고 짜증났겠어요. 그런데 그런 불편한 마음을 어떤 식으로라도 표현한 적은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제가 그런 얘기를 하면 상대방이 무안해하고 서로 분위기가 서먹해질 것 같고 지금까지 제 이미지도 있는데 그 뒷감당할 자신도 없어 그냥 참아요. 그러다 보니 동료들과의 만남이 겉도는 것 같고 집에 오면 만만한 애들이나 남편한테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그렇죠. 일반적으로 상대가 듣기 거북한 얘기를 하기 힘들죠. 그런데 그런 기분을 당사자도 아닌 가족들한테 푸니 어이없고 미안했겠어요.”
“사실 가족들도 하루 종일 헤어졌다 저녁에 만나면 서로 기대고 싶을 텐데, 엄마가 아내가 이렇게 툴툴거리며 ‘오버’하니 힘들겠죠. 동료들 역시 저를 좋아하는데 제가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사실은 제가 성질이 못돼서 그런 건데….”
“미안하고 후회스럽나 봐요. 그런데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못마땅하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글쎄요. 아마도 남에게 계속 잘 보이고 싶은가 봐요. 이렇게 계속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사실 동료들이 저를 좋게 생각하는데도 왜 제가 이렇게 불편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다 받아주는 가족이 편한 것도 아니고….”
동료나 가족과 잘 지내고 싶은 욕구
그녀는 동료들과 잘 지내고 싶었고 가족들과도 행복하길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마음은 늘 공허했다. 그들과 잘 지내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자신의 못난 모습이 더 부각되었다. 마치 내가 나를 부정적으로 보듯이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볼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좋은 관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스런 자신을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그녀는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이 필요했고 더불어 다른 사람과의 진실한 만남을 원했다. 그녀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생각한 것은 수많은 자신의 모습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영민함이 있었다.
그녀는 싫은 내색을 참는 인내심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있었다.
그녀는 감정의 표출보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신중함이 있었다.
그녀는 동료에 대한 자신의 가증함을 알아차린 분별력도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허점을 금방금방 식별할 줄 아는 특별함도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는 비웃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자제력도 있었다.
그녀는 가족을 이 세상 누구보다 편하게 생각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며 미안해하는 따뜻함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이런 자신을 안전한 이곳에서 드러내는 솔직함과 담대함까지 함께 갖고 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그녀의 모습들이 있다.
“이런 모습이 전부 저란 말인가요?” 믿기지 않는 듯 그녀가 되묻는다.
“혹시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이 있나요?”
“……” 그녀가 대답 대신 생각에 잠긴다.
“이 모든 게 당신 안에 있는 당신의 참모습들이에요. 어떠세요? 아직도 자신이 바보 같나요?”
그녀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늘 저 자신이 부족하고 당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료들로부터 칭찬받을 이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모습도 저였네요.”
내 안에는 내가 무수히 많은데 언제부턴가 습관적으로 보는 모습만을 자신으로 착각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 있음에도 늘 익숙함을 고집한다. 익숙함을 떠나 다른 각도에서 나를 볼 때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서로 다른 색깔이 상대 색깔을 품어줄 때 단풍이 든 나무에서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듯 내 안에 서로 다른 모습을 끌어안을 때 놀라운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