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 을유문화사·1만5000원
며칠 후면 한가위다. 그 해의 수확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는 축제여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엇박자인 경우가 많다. 진학과 취업, 결혼을 이루지 못한 젊은이에게 명절은 압박면접이다. 등기부나 명함에 이름을 새기지 못한 중장년에게는 비교와 비난이 빗발치는 시간이 추석이다. 모처럼 상봉한 친족끼리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을 재고 견주면서 우열을 정하느라 분주하다.
과연 승자는 좋고 패자는 나쁠까. <승리자>로 승자의 역사를 탐구했던 독일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세상을 괜찮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패배자들이라고 말한다.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패자보다 야비하고 비정한 인성을 가진 승자들이 수두룩하다. ‘이기면 그만’이라는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함과 뻔뻔함이 승리자에게 요구되는 품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슈나이더는 <위대한 패배자>를 쓰면서, 꿈을 향해 돌진하다 스러졌거나 아름다운 퇴장을 보여준 인물들을 호명한다. ‘사막의 여우’로 불린 에르빈 롬멜을 보자. 독일의 롬멜 장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인격과 능력을 인정받은 전웅이다. 처칠 총리조차 위대한 장수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과 관련된 국민장군 롬멜은 결국 자살을 강요받고 목숨을 끊는다. 비운의 패배자로 사라진 것 같지만 오늘도 그의 무덤에는 조의와 헌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롬멜의 삶이야말로 ‘실패만큼 성공적인 것이 없다’는 패자 부활의 사례로 꼽힐 만하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도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베레모와 덥수룩한 수염,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현대판 예수를 연상시키는 게바라는 고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쿠바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해방을 꿈꾸다 죽었다. 다혈질에다 직접 배신자의 머리통에다 방아쇠를 당기는 잔인함을 보였지만 사람들의 동정과 여성들의 애정을 그토록 넘치게 받은 경우가 있었던가 싶다. 항상 구멍 난 양말을 신고 금욕과 노동에 열중한 그를 국민은 사랑했지만 현실권력은 불편해했다. 모든 관직을 내던지고 다시 풍차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길을 떠난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붙잡혀 극비리에 총살된다. 하지만 게바라의 사진은 티셔츠, 모자, 열쇠고리, 시계, 커피잔에 부착되고 그의 이름을 딴 시계와 맥주는 끊임없이 팔리고 있다.
오묘하게도 동료나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조국에 버림받은 사람들이 역사에서 부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생전에 받지 못한 칭송을 하다못해 사후에라도 얻게 된다는 것은 참 역설적이다. 게다가 패배한 위인들은 그래도 자웅을 겨뤄볼 기회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은 쓰라린 현실을 가슴에 품고 묵묵히 살아간다. 바로 이렇게 호승지심(好勝之心)을 부리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삶과 세상은 그나마 돌아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패배자는 보통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