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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경제]<리틀 포레스트>

입력 2018.09.10 15:23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지친 나를 위한 나만의 공간 ‘케렌시아’

혜원에게도 고향집은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기댄 최후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의 공간이 있다. 먼 곳에 있는 고향일 수도 있고, 작은 나의 방일 수도 있다. 일상에 지쳐 녹초가 됐을 때 당신을 위로해줄 공간은 어디인가.

“난 견디지 못하고 떠나왔다.”

배우 김태리가 출연한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한 장면./리틀빅픽쳐스 제공

배우 김태리가 출연한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한 장면./리틀빅픽쳐스 제공

고향집으로 돌아온 혜원이 나지막이 읊조린다. 여느 청춘이 그렇듯 그녀도 아등바등 살아온 인생이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공부했건만 임용고시에서 떨어졌다. 몸도 마음도 망가져 쓰러지기 직전 그녀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의 귀향기다.

남자친구에게조차 얘기하지 않고 고향집으로 돌아온 혜원. 그녀는 머리나 식힌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갈 작정이다. 그런데 고향의 사계절과 친구들이 그녀를 반긴다. 항상 허기졌던 서울과 달리 고향은 먹을거리도, 인심도 넉넉하다. 막걸리, 김치전, 배추전, 콩국수, 단밤, 홍시, 그리고 크림브륄레와 오코노미야키를 손수 해먹으며 혜원은 떠나버린 엄마를 추억한다.

원작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다. 임순례 감독은 ‘리틀 포레스트’라는 제목에 대해 “어떤 농촌의 이야기가 아니라 힐링의 공간으로 저마다 작은 숲이 필요한 우리 모두의 공간”이라고 해석했다.

혜원에게 고향집은 ‘케렌시아’라는 얘기다. 케렌시아(Querencia)는 ‘바라다’라는 뜻의 동사 ‘querer(케레르)’에서 나온 단어로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 귀소본능의 장소 등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다.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유래됐다. 경기장에서 확실히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투우경기 중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이다. 투우사는 케렌시아 안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케렌시아는 현대적인 의미로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또는 그런 공간을 찾는 경향’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소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도 잠시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케렌시아가 있다. 대표적인 케렌시아가 내 방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은 재충전을 위한 최고의 공간이다.

퇴근길 한잔이 생각나 들르는 동네 포장마차도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 여유있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동네 카페나 조용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 조용한 심야영화관도 케렌시아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짧은 휴식을 할 수 있는 패스트 힐링 플레이스도 케렌시아다. 코인노래방, 수면카페, 안마카페 등 1인 휴식공간이 대표적이다. 누적된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해외여행도 나만의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

나만의 장소는 꾸미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식물로 실내를 꾸며 공기정화와 심리적 안정 효과를 함께 얻는 ‘플랜테리어(planterior)’나 사무실 책상 위를 예쁘게 꾸미는 ‘데스크테리어(deskterior)’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런 트렌드를 마케터들이 놓칠 리 없다. 최근 공급되는 아파트에는 ‘케렌시아’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침대와 가구도 ‘케렌시아’ 스타일을 강조한다.

혜원에게도 고향집은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기댄 최후의 공간이다. 잠시 있다가 떠날 것이라던 혜원은 겨울·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와도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마침내 진정한 케렌시아를 찾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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