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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잊지 않았던 피겨 선수 데니스 텐을 추억하며

입력 2018.07.30 15:02

  • 김하진 스포츠경향 기자

불모지서 피어오른 ‘아름다운 스케이터’

지난 7월 19일 밤, 한국 피겨팬들에게 슬픔을 안겨준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카자흐스탄 피겨 영웅 한국계 데니스 텐(25)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텐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괴한에게 피습당해 숨졌다. 텐은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는 범인 2명과 난투극을 벌이다 칼에 찔린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카자흐스탄 현지는 ‘겨울 스포츠 영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슬픔에 잠겼다. 텐의 장례식은 지난 21일 알마티 발라샥 스포츠센터에서 5000명이 넘는 인파가 참석한 가운데 시민장으로 거행됐다. 텐의 시신이 카자흐스탄 군 의장대에 의해 장례식장으로 운구되자 추모객은 박수로 텐의 영혼을 기렸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아르스탄벡 무하메디울 문화체육장관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세계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며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애도했다.

데니스 텐이 지난 2월 16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 출전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데니스 텐이 지난 2월 16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 출전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카자흐에 첫 메달… 피겨 영웅이 되기까지

슬픔의 물결은 한국까지 이어졌다. 텐은 한국계의 후손으로 한국에 이름이 알려져 있다. 구한말 독립운동가 민긍호 선생의 외고손자다. ‘피겨 여왕’ 김연아와 동시대에 활약한 텐은 유독 한국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2015년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역대 남자 싱글 선수 중 세 번째로 높은 289.46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텐의 개인 최고점으로 남았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남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땄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해 조국의 땅에서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이 열린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피겨계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1993년 알마티에서 태어난 텐은 다섯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피겨를 시작했다. 비인기 종목이 늘 그렇듯 텐은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 피겨 연습을 했다. 두꺼운 옷을 여러 개 껴입고 야외에서 훈련을 했고, 실내 아이스링크를 전전하며 연습을 했다. 본격적인 피겨 선수로서의 생활은 러시아에서 시작됐다. 10살이 되던 해인 2004년 전문적인 피겨 지도를 받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2008년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카자흐스탄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맛봤다.

2010년부터는 미국에서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반 라이사첵의 지도자인 프랭크 캐롤 코치의 지도를 받았고, 이후부터는 세계적인 수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카자흐스탄 사상 첫 메이저 국제대회 피겨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이렇게 차차 이름을 알려갈 때에도 텐은 한국을 잊지 않았다. 2010년에는 한국을 찾아 자신의 외고조할아버지인 민긍호 선생의 산소를 방문했다. 이후 그의 삶에 한국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는 “고조할아버지는 진짜 영웅이고 그의 피가 내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큰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을 준비하던 텐은 그 해 썩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올림픽 시즌에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그치는 등 전년도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쇼트프로그램에서 84.06점에 그쳐 9위에 머무를 때까지만 해도 메달권 진입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다른 경쟁자들이 잇따라 실수를 저지르며 무너진 가운데 171.04점을 받아 총점 244.10점으로 하뉴 유주르(일본), 패트릭 챈(캐나다)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텐의 동메달은 카자흐스탄의 올림픽 피겨에서 딴 첫 메달이다. 이 메달로 카자흐스탄의 영웅이 된 그는 한국의 ‘영웅’ 김연아와 갈라쇼에서 호흡을 맞췄다. 4년 뒤 열린 평창올림픽은 텐에게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의의 부상이 그에게 찾아왔다. 올림픽을 한 해 앞둔 2017년 8월 한국에서 열린 아이스쇼를 준비하다가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쳤다. 재활 기간은 꽤 길었다. 의료진이 스케이트를 타기 힘들다고 할 정도였지만 텐은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반드시 참가하고 싶었다. 국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에 쓰인 자기 소개에서도 ‘한국의 유명한 장군 민긍호의 후손’이라고 표기돼 있다.

전세계 피겨계 모두가 슬퍼한 텐과의 이별

꽤 좋지 못한 상황에서 대회에 참가했기에 결과 역시 좋지 않았다. 4회전 점프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쇼트프로그램에서부터 70.12점을 받아 27위를 기록해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할 수 있는 커트라인 통과에 실패했다. 텐은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무대라 준비를 더 많이 했다”며 “의미 있는 무대였다”고 돌이켜봤다. 그리고 이 올림픽은 텐의 마지막 올림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텐의 사망 소식은 피겨 선수들에게 비통함을 안겨줬다. 김연아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데니스 텐의 비극적인 소식을 들어 너무 충격적이고 아직 사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라며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충격을 전했다. 이어 “데니스는 정말 성실하고 피겨스케이팅을 너무나 사랑했던 선수였다”면서 “가장 열정적이고 훌륭한 스케이터를 잃어 너무나 슬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아울러 생전 데니스 텐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함께 올렸다.

또 한국 피겨 여자 싱글 간판 최다빈(고려대)은 데니스 텐의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올린 뒤 영문으로 “데니스 텐의 사망 소식을 믿을 수 없다”며 “카자흐스탄에서 날 챙겨주고 힘이 돼 줬던 텐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텐이 내게 해준 마지막 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많이 그립다”고 밝혔다. 지도자 데이비드 오서도 “피겨계는 아름다운 스케이터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데니스 텐과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추모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도 셰이크 아흐마드 알사바 의장 이름으로 낸 성명에서 “텐의 사망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이며,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텐의 생전 마지막 꿈은 영화로 제작돼 나올 예정이다. 러시아 유명 감독인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텐의 일생과 그가 못다 이룬 꿈을 어떻게 스크린에 옮길지 기대된다. 텐은 떠났지만 그의 꿈은 영원히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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