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세상을 보는 색안경, ‘마음판’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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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세상을 보는 색안경, ‘마음판’을 바꾸자

입력 2018.07.30 15:01

  •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그런 세상과 효율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준거틀’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이제 저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서 계속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새까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정당과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갈채를 받았던 촌철살인의 달인 고 노회찬 의원의 어록이 요즘 크게 회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소위 ‘판 교체론’이라고 불리는 위의 말일 것이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선거대책본부장과 선거운동원들이 서울시 구로구에서 고기불판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선거대책본부장과 선거운동원들이 서울시 구로구에서 고기불판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고기를 구워본 사람은 누구나 다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판에 계속 고기를 구우면 먼저 구웠던 고기들의 찌꺼기가 남아서 타들어가기 때문에 새 고기를 넣어도 고기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결국 탄 고기맛이 날 뿐이다. 결국 새 고기는 새 판에 구워야 고기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정치권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혼 얘기 나오면 호감 사라지는 경우

모든 비유가 그렇듯이 ‘판 교체론’은 비단 고기 구울 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마음의 판도 수시로 점검하고 갈아야 한다. 판을 새것으로 자주 갈아야 고기가 제맛을 다 내듯이 우리의 마음의 판도 자주 갈아야 세상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지각하고 처신할 수 있다. 만약 오래된 판을 계속 사용한다면 과거의 잔해들이 남아서 새로운 세계에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의 판을 가지고 있다. ‘준거틀’ 또는 ‘준거체계(準據體系)’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틀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 각자는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자기와 남을 비교하고 평가한다. 또 이 준거틀을 규범이나 가치를 판단하는 표준으로 삼기도 한다. 이 준거틀이 유연하고 항상 새롭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또한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준거틀이 견고하고 오래된 것이라면 경직되고 완고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과 환경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오래 사용하는 동안 이 판에는 과거의 경험에서 초래된 많은 감정의 응어리들이 남아있어서 새로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기보다는 과거의 행동패턴을 되풀이하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음식을 갖다 주는 것이 최선의 접대를 받는 것이라는 준거틀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아무리 최고급 호텔의 식당이라도 만약 뷔페식 식당이라면 대접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내가 일일이 음식을 접시에 담아 와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이런 식당으로 초대한 사람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얼마든지 골라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을 즐길 수 있는 준거틀을 가질 때 비로소 뷔페식 식당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첫눈에 봐도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이 있었다. 주위에는 이 여성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남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도 남자와 교제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남자와 사귀는 초기에는 매우 적극적이어서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즉시 상대에 대한 호감은 사라지고 관계는 급하게 식는 것이었다.

이런 패턴이 한두 번이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남자와의 관계가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때문에 그동안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좋은 남자를 여럿 만났지만 아직까지 미혼이었다.

이런 관계가 되풀이되자, 혹시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통해 이 여성의 마음에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어려서 어머니와 자신을 두고 다른 여성에게로 떠난 버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모든 남성이 아버지처럼 결혼하면 결국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마음의 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판을 가지고 남성과 관계를 맺는 한 이 여성은 결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수시로 판을 청소하고 바꿀 수 있는 용기

해수욕장에 가면 다양한 색상의 안경을 쓰고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빨간 색안경을 끼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파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해보자. 빨간 색안경을 쓴 사람에게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빨갛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파란 색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파랗게 보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이 서로 세상은 어떤 색깔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을 가정해보자. 아마 자신들이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큰 사단이 벌어질 것이다. 당연히 빨간 색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은 세상이 빨갛다고 주장할 것이고, 파란 색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세상이 파랗다고 주장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처럼 세상을 본다고 믿고 살아온 사람이 자기와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몹시 황당하고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좋은 말로 틀렸다고 타이를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설명하고 설득하고 더 나아가서는 심한 언쟁까지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나름의 색안경을 끼고 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그런 세상과 효율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준거틀’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이 준거틀은 세상과 효율적으로 관계 맺게 해주는 터전이 된다.

한때는 이 준거틀이 세상과 관계 맺는 데 유용했지만, 지나치게 오래 고정되어 있다면 새로운 환경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과거의 감정의 응어리들과 생각의 틀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안경도 수시로 닦아주어야만 대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다른 색의 안경을 써야 세상을 다채롭게 볼 수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수시로 준거틀을 점검하고 판에 남아있는 부스러기들을 말끔히 닦아야 새로운 고기맛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판을 바꾸어야 한다. 비단 정치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수시로 판을 청소하고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비극적으로 우리 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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