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급속히 사라져가는 것들의 페이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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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급속히 사라져가는 것들의 페이소스

입력 2018.07.23 14:35

  • 정용인 기자

그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왜 칸의 심사위원들은 ‘대한민국 파주에 사는 청년의 분노’가 아닌 ‘도쿄 도심의 낡은 가옥에 거주하는 좀도둑 가족’을 선택했을까.

제목 어느 가족

원제 万引き家族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키키 키린,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상영시간 121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8년 7월 26일

㈜티캐스트

㈜티캐스트

이렇게 젊은 감독(감독은 1962년생이다)이 거장 맞냐는 제목을 달았었는데,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해 이 코너에서 리뷰한 <세 번째 살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말이다. 1년 사이, 그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 <어느 가족>으로. 역시 칸 수상을 기대했던 <버닝>의 이창동 감독은 받질 못했다. 코너에서 리뷰하지는 않았지만, 개봉 한참 후 <버닝>도 봤다. 왜 칸의 심사위원들은 ‘대한민국 파주에 사는 청년의 분노’가 아닌 ‘도쿄 도심의 낡은 가옥에 거주하는 좀도둑 가족’을 선택했을까. (<어느 가족>의 원제는 좀도둑을 뜻하는 ‘만비키(万引き)’ 가족이다.)

‘어쩌다 보니’ 한 가족을 이룬 사람들

영화 후반, 경찰 조사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해서는 스포일러에 해당하니 일단 피하기로 하자. 어찌됐든 이들은 진짜 혈연으로 엮인 가족이 아니다. 개발의 광풍을 피해 아마 한 50년 넘게 그 자리에 있던 집의 소유주는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 분)다. 언제부터인가 이 좁고 낡은 집에 오사무·노부요 시바타 부부와 쇼타, 노부요의 여동생 그러니까 쇼타의 이모인 아키까지 얹혀 살고 있다. 얼핏 보기엔 오순도순 대가정이지만 사실은 오사무 부부가 진짜 부부였는지, 할머니는 그들이 원래 뭐하던 사람들이었는지 딱히 아는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어쩌다 살다보니’ 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을 뿐.

여기에 막내가 추가된다. 가정학대에 시달리던 6살짜리 꼬마 유리(원래 이름은 쥬리였다). 마트에서 ‘한 건’을 하고 돌아오던 오사무 부자가 발견하여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노부요는 “그거 유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다시 데려다 놓으라고 하지만, 돌아간 자리에서 처지곤란한 유리 때문에 다투는 부부싸움을 엿듣고 다시 데려온다. 이제 이 가족은 1남1녀의 손자손녀까지 둔 대가족이 되었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선진복지 노인케어 시스템을 자랑하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회복지사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내가 죽어 이 집이 빠지면 당신은 얼마나 챙기게 되우?” 물론 사회복지사가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할머니가 묻는 대상은 복지사 너머 버티고 있는 일본 사회 내지는 정부다.

‘가장’ 오사무도 좀도둑질만 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일용직 노가다를 나갔던 그는 다쳐 돌아온다. 일용직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는 ‘정보’를 듣고 기뻐하는데, 결국 그는 한푼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 권리를 찾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 투쟁할 만도 하건만, 그는 그냥 체념하고 좀도둑질로 근근이 살아갈 뿐이다. 학교를 가는 또래 아이들을 바라보며 쇼타는 언젠가 아버지 오사무가 말한 “‘집에서 공부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고 혼잣말처럼 동생에게 알려준다.

복지국가 일본 사회의 어두운 그늘

영화는 현란하게 바뀌는 현대사회에서 급속히 사라져가는 것들, 이제 그 본래의 의미마저 퇴색해 불분명해진 어떤 가치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결속된 이들의 삶이 오히려 본래의 가족이 담은 의미를 재현해내고 있다. 집 베란다에 홀로 방치되었던 소녀 유리에게는 “새 옷을 사주겠다”는 엄마의 말은 반드시 학대와 폭력으로 귀결된다는 ‘경험칙’이 그녀가 세상에서 태어나 6년 동안 겪은 세상의 전부다. 도박장 밖의 자동차에 방치되어 있던 소년 쇼타는 도박에 미쳐 양육을 포기한 부모 대신 좀도둑질을 일삼던 부부를 따라나섰었다. 좀도둑질 초보 쇼타와 유리가 택한 연습 장소는 동네 귀퉁이의 낡은 잡화상이다. 한국에서도 흔히 ‘불량식품’이라고 부르는 막과자를 파는 구멍가게다. 그들은 가게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돌리고 물건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 할아버지는 사실 다 알고 있었다. 쇼타에게 싸구려 막과자를 건네며 “동생에게까지 가르치진 말라”고 말한다. 다시 찾은 그 가게는 닫혀 있고 입구에는 ‘상중’ 표시가 붙어 있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구멍가게 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이들 가족이 그나마 숨쉬며 살아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 것이다.

영화의 주제의식도, 그리는 세계도 선명하다. ‘옛것 내지는 전통적 가치가 좋은 것’이라는 명시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감독은 복화술을 끌어들인다. 죽기 전날, 바다로 가 물놀이를 하는 이 ‘가족’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입모양만으로 “고맙다”고 되뇐다. 한 번도 오사무에게 아버지라고 부른 적 없던 쇼타는 수용시설로 돌아가면서 버스 창밖으로 오사무가 보이지 않게 되자 역시 입모양만으로 ‘아버지’라고 이야기한다. 현재의 잣대로는 비도덕적으로 규탄받는 이들 가족의 행태(예를 들어 할머니의 시신을 마당 구석에 묻는)가 정당화되는 마술이다. 짙은 여운을 남기는 좋은 영화다. 강력 추천한다.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 릴리 프랭키

영화 의 스틸사진.

영화 <어느 가족>의 스틸사진.

아버지 오사무 역을 맡은 배우는 릴리 프랭키다.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국내 팬도 많다. 한국에서도 많이 팔린 <도쿄타워>라는 베스트셀러도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페르소나라고 볼릴 만큼 그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다. <어느 가족>과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겹쳐 떠올릴 영화는 감독의 2013년 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일 것이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사실을 6년이 지나 알게 된 두 가족 이야기다. 주인공 아버지 료타는 성공한 건축가에다 도쿄 시내의 맨션에 살고 있다. 릴리 프랭키는 상대 가족, 군마현의 낡은 전파상을 운영하는 가족의 가장이다. 료타의 시각에서는 어딜 봐서도 내놓을 만한 장점이 없다. 그런데 자신이 기르던 ‘케이타’와 친자 ‘류세이’는 결국 다 이 아버지를 따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료타는 자신의 오만을 깨닫는다.

아마 릴리 프랭키를 이 영화에서 만나는 순간, 많은 관객들은 ‘가진 것은 없어도 허허실실, 다정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라는 <그렇게 아버지가 돤다> 캐릭터의 연장선에서 <어느 가족>의 오사무를 보게 될 것이다. 거의 아버지 료타의 1인칭 주관 시점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비해 <어느 가족>은 오사무의 캐릭터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다. 아파트 건설현장에 노가다로 나간 오사무는 아직 공사가 덜 된 집 문에 들어서는 시늉을 하며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쇼타’를 찾기도 한다. 경찰에 따르면 오사무가 도박장 주차장에서 주워온 아들에게 붙인 ‘쇼타’라는 이름은 실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름이다. 남들처럼 애정을 받기를 갈구했지만 결국 10대의 천진무구함에서 묶여 늙어버린 남자. <어느 가족>에서 가장 눈에 밟히는 역은 물론 6살짜리 꼬마 아가씨 유리이지만, 어느 캐릭터 하나 진한 여운을 남기지 않은 경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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