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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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공동체

입력 2018.07.23 14:35

  • 손 미(1982~ )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러떨어진 양파는 첨벙첨벙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을 열면 미로들.
오랫동안 문 앞에 앉아 양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때때로 쪼개고 열어 흰 방에 내리는 조용한 비를
지켜보았다. 내 비밀을 이 속에 감추는 건 올바른가.
꽉꽉 찬 보따리를 양 손에 쥐고
조금만 참으면 도착할 수 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내 집.

작아지는 양파를 발로 차며 속으로, 속으로만 가는 것은 올바른가. 입을 다문 채 이 자리에서 투명하게 변해 가는 것은 올바른가.

양파는 먼저 껍질을 만들고 켜켜이 속을 만든다. 껍질 멀쩡해도 속 문드러진 양파. 우리 사는 세상이랑 우리 삶이랑 비슷하다. 양파가 제철이라 달고도 맵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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