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재판정이 아니고 가장은 판사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의 자신의 중요한 역할이 가족 내 갈등이 발생했을 때 좋은 판사처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생활한다.
<경향신문> 7월 12일자에 대한민국 판사의 특징을 소개하는 기사(‘대한민국 판사, 당신은 누구인가’)가 실렸다. 이 기사에 의하면 판사들의 평균적인 특징은 이들이 수재(秀才)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과대학 3학년 혹은 4학년 때 합격률 3%인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그 후 이들은 수재 1000여명이 모인 사법연수원에서 못해도 100등 안팎의 성적을 거둬서 판사가 됐다.
6월 11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이렇게 힘든 경쟁과 성취의 결과로 판사가 된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우선 ‘좌절을 모르는 사람의 자부심’이다. 그리고 이들을 움직여 온 것은 칭찬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제일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고, 그렇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대화를 별로 안 하고, 또 할 필요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말을 경청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판사들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판단하는 하는 것에만 익숙하다. 토론보다 결정에 익숙한 생활은 강한 자기 확신을 갖게 만든다.
‘화목한’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판사들의 이런 일반적인 특징을 나열하는 이유는 필자가 그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거나, 그들의 일반적인 성향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필자가 상담을 하다 보면 판사와 같은 특징을 가진 부모 밑에서 성장하면서 큰 상처를 받은 내담자를 종종 만나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하소연은 “우리 집에는 판사만 있고 아버지는 없어요”라는 것이다.
내담자의 “집에 판사만 있다”는 말은 아버지가 실제 판사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판사가 집에서도 판사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의외로 많은 아버지들이 직업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집에서 판사들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며 가족들을 대한다는 의미이다. 가정은 재판정이 아니고 가장은 판사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의 자신의 중요한 역할이 가족 내 갈등이 발생했을 때 좋은 판사처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생활한다.
상담 상황에서 내담자들이 “우리 집에는 ○○만 있고, 아버지는 없어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는 교사만 있고, 아버지는 없어요”, “우리 집에는 군인만 있지, 아버지는 없어요”라는 말을 종종 한다. 아버지가 교사인 경우, 집에서도 마치 교사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군인인 경우 집에서도 군인처럼 행동하고 자녀들에게도 그에 맞게 행동하길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들 내담자가 한결같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가장이 가족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일방적으로 자신을 따를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아버지는 가정에서 교사와 판사, 그리고 유사시에 가족을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당연히 해야 한다. 가정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녀를 잘 교육시킬 의무가 아버지들에게는 있다. 또 가족 내에 의견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있을 때는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려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킬 의무가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정에서 이들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화목하게 이끌 더 중요한 책무가 있다. 가정이 화목하기 위해 교육과 판단과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화목한’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전통적으로는 가족 구성원이 ‘한 목소리’를 내는 집이 화목한 집으로 여겨져 왔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일심(一心)’이 되어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집이 화목한 집이다. 만약 한 사안에 대해 가족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고, 그것 때문에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면 ‘콩가루’ 집안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사실 가정은 ‘한’ 목소리를 내가 참 어려운 집단이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같아야 하지만, 사실 가족은 동질적인 구성원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 목소리를 내기 가장 어려운 조직이 가정이다. 우선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룬다. 지금도 많이 읽히는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제목처럼, 여자와 남자는 서로 많은 면에서는 같지만 동시에 여러 모로 다른 존재이다. 특히 서로 사랑할 때 남자와 여자는 감정과 욕구에서 서로 큰 차이를 보인다.
또 가족은 세대간의 차이가 항상 존재하는 조직이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는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선호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뉠 수밖에 없다. 부모의 경험과 현실을 중시하는 성향과 이상을 꿈꾸고 변화를 갈구하는 자녀와는 분명히 의견이 차이가 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비교적 보수적인 부모와 진보적인 자녀는 당연히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장은 악단의 지휘자가 돼야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전통적으로 우리 문화가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즉 가장(家長)에게 절대적인 결정권을 위임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은 곧 법이었다. 이런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부인은 일방적으로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살았다. ‘부창부수(夫唱婦隨)’, 즉 남편의 의견에 부인이 따르는 것이 부부화합의 도리라고 부덕(婦德)을 가르쳐 왔다. 동시에 자녀는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효(孝)’의 근본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가족문화에서 아버지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당연히 가족을 교육하고, 옳은 선택을 하고, 갈등이 있을 때 시시비비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었다. 즉 바람직한 가장의 역할은 ‘판사(判事)’, ‘교사’, ‘군인’ 등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부창부수가 바람직한 부인의 덕목이 아니다. 또 무조건 복종하는 것만이 바람직인 ‘효’의 길도 더 이상 아니다. 이런 문화에서 가족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리도 존중하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악단의 지휘자처럼 다양한 소리를 잘 조정해서 아름다운 화음이 나도록 지휘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유능한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는 곡의 해석에 대한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덕목은 악단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연주자들의 소리를 듣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