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경제] <독전> 마약범 검거에 올인하는 ‘크런치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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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경제] <독전> 마약범 검거에 올인하는 ‘크런치모드’

입력 2018.07.02 15:06

  •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영화속 경제]  마약범 검거에 올인하는 ‘크런치모드’

마약은 지독하다. 한 번 중독되면 어지간해서는 자력으로 헤어나기 힘들다. 마약중독자를 쫓는 형사도 여간 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한 자들의 전쟁이다. 이해영 감독의 영화 <독전>은 그래서 독하다. 독전(毒戰)은 중국에서 ‘마약전쟁’을 뜻한다.

형사 원호(조진웅 분)는 오랫동안 마약조직을 추적하고 있다. 조직의 보스는 ‘이 선생’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인물이다. 마약조직의 비밀아지트에 의문의 폭발이 일어난다. 이 선생의 소행이 의심된다. 원호는 이 선생을 잡기 위해 유일한 생존자 서영락(류준열 분)을 회유한다. 이 선생은 베일에 싸인 악마 같은 존재다. 원호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이 선생을) 잡는다.”

원호는 이 선생을 광적으로 쫓고 있다. 작전 중 동료 여럿을 잃었다. 그는 말한다. “어떤 한 인간을 X나게 집착하다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신념 같은 것이 생겨.” 원호는 이 선생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작전 중 마약 흡입도 마다하지 않는다. 급작스레 다량의 마약을 흡입하면 몸에 쇼크가 올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오로지 이 선생 검거만 생각한다. 이 선생을 잡기 전까지 그에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은 없다. 원호는 이 선생을 검거할 때까지 ‘크런치모드’ 상태다.

크런치모드란 건강을 해칠 정도의 살인적인 장시간 근무를 말한다. 원래는 게임업계의 열악한 근무관행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요즘은 초장시간 근무를 뜻하는 일반용어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시간이 중요하다. 유행이 빠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게임이라도 늦게 출시되면 사장될 수 있다. 그래서 게임 출시일이 다가오면 회사의 간이침대에서 먹고자며 프로그램을 만든다. 잠도 쪽잠을 잘뿐더러 식사도 제대로 못한다. 개인일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길게는 두 달 정도까지 이런 식으로 일한다. 그러니 노동자가 건강할 리 없다. 넷마블 네오에서 게임 개발업무를 하던 20대 노동자가 급성심근경색으로 급작스레 사망했다. 알고보니 청년노동자는 1주에 최고 95시간55분을 일했다. 2017년 근로복지공단은 이 노동자의 사망원인이 초장시간 근무에 있다고 판단했다. 살인적인 노동은 우울증을 유발해 노동자를 자살로 몰기도 한다. 게임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 중에 ‘칼야퇴’가 있다. ‘칼퇴근’에 빗댄 것으로 밤 10시까지만 야근해도 집에 빨리가는 것이라는 자조가 섞여 있다. 크런치모드는 드라마, 광고, 방송 등 콘텐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쉽게 노출된다.

크런치모드는 공기가 있는 건설업계도 심하다. 특히 설계 관련 노동자가 크런치모드와 쉽게 마주한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설계시공 일괄입찰이나 기술제안 입찰 등 기술형 입찰을 할 때는 충분한 설계기간을 부여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설계시공 일괄 입찰은 최소 5개월, 기술제안은 최소 4개월의 설계기간을 주도록 했다.

한국 사회는 과로사회였다. 젊음을 바쳐 회사에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일하다’는 뜻의 노동(勞動)보다 ‘부지런히 일하다’라는 뜻의 근로(勤勞)가 더 많이 쓰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한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28위 수준이다. 많은 노동시간은 높은 산재율로도 이어졌다. 정부가 최근 주52시간 근무제를 전격도입한 것은 저효율의 노동중독을 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원호는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한 뒤에야 비로소 크런치모드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끝내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에게 이 선생 검거는 삶의 존재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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