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무릎을 꿇었다. 지방선거에 참패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무릎 퍼포먼스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난 번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그들은 “도와 주십시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읍소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자 고작 친박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박근혜를 도와주다가 결국 촛불을 만났다.
박근혜 탄핵 후 새누리당을 뛰쳐나가 바른정당을 창당하던 이들도 첫 출발 자리에서 무릎부터 꿇었다. 그들은 “진정한 보수정당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하며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도 안 되어 그들 중 대다수는 자신의 입으로 낡은 보수라 비판하던 한국당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원심력을 발휘했다. 반복되는 무릎 퍼포먼스는 식상하다. 진정성마저 없는 무릎 퍼포먼스라면 더욱 식상하다. 그래서인지 국민의 시선도 냉담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 문구를 다른 말로 바꿔 패러디하며 그들을 조롱했다. 그들은 2년 후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더 큰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들이 무릎을 꿇었다. 월드컵 축구 대표팀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었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부진을 보이면서 겨우 출전권을 따내자 “월드컵에 진출당했다”는 조롱까지 들었던 축구 대표팀이었다. 그래서인지 예년 월드컵과 다르게 애초부터 별 기대를 받지 못했던 그런 축구 대표팀이었다. 그래도 막상 시합이 시작되자 국민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역시나 탄식과 한숨만 이어질 뿐이었다. 단 한 개의 유효슈팅조차 하지 못한 채 패한 후 그들은 울먹이며 경기장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엔 국민들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분노했고, 어떤 이들은 냉소했지만 그럼에도 또 다른 많은 이들이 그들을 위로했다. 그래서인지 축구 대표팀은 멕시코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고 막판에 시원한 득점 장면까지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계 1위 독일과의 대결에서는 믿을 수 없는 통쾌한 승리를 이끌어 냈다. 이렇게 그들은 진화하면서 축구팬들에게 기대를 품게 해주었다.
똑같이 꿇은 무릎이라도 한국당 의원들의 무릎과 축구 대표팀의 무릎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당의 연출된 무릎 퍼포먼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힘을 가질 수 없다. 경기에 패한 축구 대표팀처럼 감당할 수 없는 울분과 자책이 온몸을 짓눌러 저절로 꿇어지는 무릎이어야만 사람들은 감동하고 공감한다. 게다가 무릎을 꿇고 나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또다시 무릎을 꿇어봐야 사람들은 더 이상 용서도 기대도 하지 않는다. 축구 대표팀처럼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비로소 사람들은 용서하고 다음을 기대한다. 무릎은 그럴 의지가 있을 때만 꿇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