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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집

입력 2018.07.02 15:04

  • 이서화(1960~ )

아버지가 지은 집은 뒷산의 협력이 있었고 남향의 묵인이 있었다 날마다 그늘은 집을 돌고 돌았다 마당의 감나무까지도 햇빛의 반대 방향으로 그림자가 고양이처럼 돌아다녔다 함석지붕은 장마의 서식지였고 하늘의 뜨거운 아랫목이었으며 내 운동화가 잘 마르던 즐거운 건조대였다 지금 그 함석지붕엔 노을이 묻어 있고 곧 어둠에 허물어질 것이다

집은 그 집 식구의 평수다 한 번 불탄 집의 평수는 다른 곳으로 버려지고 다시 지어 넓힌 그 넓이로 우리는 자라고 점점 멀어졌다 결국, 텅 빈 평수가 될 때까지 집은 사람의 자취로 흥하고 쓸쓸함으로 가득 찬다 식구가 줄어들면서 마당 빨랫줄에 걸쳐져 있던 바지랑대는 일렬로 맺힌 빗방울을 받치고 있다 마루는 말없이 때가 끼고 방문들은 시큰둥해졌으며 감나무는 저 스스로 집안 사정을 감안해 풋감을 서둘러 떨어뜨렸다

아버지는 쓸쓸한 평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집을 아버지의 집이라 불렀고 지금도 그 집엔 아버지가 산다 그러나 누구도 이 쓸쓸한 평수를 상속 받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림자가 구박 받던 형제처럼 그 땅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해를 등지면 그림자가 앞서고 해를 마주하면 그림자는 뒤를 따른다. 해가 뉘엿해지면 그림자는 더 길어지고 해가 중천이면 그림자는 발 아래 밟힌다. 함께 있으면 그림자는 뭉쳐지고 그림자 없는 밤은 세상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그림자 없는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다. 그게 무엇의 그림자이든.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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