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김성근 감독도 실패로 끝나
한화는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는 시즌을 치르고 있다. 바닥권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는데, 되레 선두권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한화는 6월 이후 치열한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농담 몇 가지. 소개팅에 나갔는데 상대가 한화팬이라면 무조건 사귀어야 한다. 지하철을 탔는데 한화 저지(유니폼 상의)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소개팅 상대로 최적인 이유는 연인이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에 빠져도 그 사랑이 변치 않기 때문이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오랫동안 괴롭고 쓸쓸하고 외로운 응원을 변함없이 펼쳐서 심신이 피로하기 때문이다. 다른 팀 팬들이 위로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과 장종훈 코치가 5월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승부 끝에 승리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프로야구 한화의 마지막 가을야구는 2007년이었다. 류현진(LA 다저스)이 데뷔 2년차를 맞던 해였다. 이후 10년 동안 한화는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했다. 가을야구 진출을 위해 2013시즌을 앞두고 프로야구 최다 우승 감독인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되레 개막 후 13연패라는 악몽에 빠졌다. 개막 13연패는 2003년 롯데의 개막 12연패 기록을 넘는 신기록이었다. 그때 한화팬들은 패배가 거듭되면서도 열광적인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쯤부터 한화팬들에게는 ‘보살 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쌓이는 패배 속 번뇌를 모두 다 참아내며 몸 안에 사리가 쌓일 지경이라는 뜻이다. 2015년에는 김성근 감독과 계약했다. 팀 체질 개선을 위한 시도였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대형 FA들도 함께 영입했지만 원하던 가을야구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 감독의 강한 드라이브 속에 혹사 논란만 커졌다. 한화의 가을야구는 멀어 보였다. KBO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한 기록은 LG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기록한 10년이었다. 한화는 2017년 가을야구에 실패함으로써 역대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여러 가지 점을 고려했을 때 2018시즌 역시 단숨에 가을야구를 노리기보다는 팀 전력을 추스르면서 바닥을 다지는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 구단의 운영방향도 무리하게 성적을 내기보다는 젊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쪽으로 잡았다. 새 감독으로 한용덕 감독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결정 때문이었다. 한 감독은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 출신으로 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투수 출신 감독으로 무너진 한화 마운드를 재건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얹혀졌다.
한화는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는 시즌을 치르고 있다. 바닥권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는데, 되레 선두권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한화는 6월 이후 치열한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걱정스러웠던 마운드, 특히 투수가 다 말라버렸다고 여겨졌던 불펜 마운드는 리그에서 가장 단단한 팀으로 바뀌었다. 타선에서도 베테랑과 새 얼굴들의 조화가 이뤄지면서 만만치 않은 힘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의 깜짝 활약이 더해졌다고 하더라도 한화의 선전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화는 올 시즌 팀 캐치프레이즈로 ‘Break the frame’을 정했다. 정해진 틀을 부수자는 뜻이다. 팀 분위기를 바꾸자는 뜻이지만 실제 리그 판도를 뒤흔드는 폭풍의 핵이 됐다. 그리고 한화의 변신은 실제로 ‘틀을 부수는’ 변화에서 시작됐다. 한화의 불펜을 예상 밖으로 단단하게 만든 첫 번째 단추는 송은범이었다. 송은범은 SK와 KIA를 거쳐 FA로 한화와 계약했다. KIA에서 한화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투구를 잃어버렸다. 150㎞를 쉽게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지만 마운드에서 얻어맞는 일이 잦았다. 선발로도 불펜로도 나서지 못하면서 2군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졌다.
올 시즌 송은범은 한화 구원진의 확실한 1이닝 카드로 자리잡았다. 150㎞ 강속구를 포기했고, 투구폼에도 변화를 줬다. 강속구 투수가 구속을 포기하는 일은 직업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투수에게 구속은 영혼과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송은범은 구속을 포기했다. 속도를 떨어뜨리는 대신 공 끝에 변화를 줬다. 힘 있는 포심 패스트볼이 아니라 공 끝의 변화가 심한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투구폼도 바꿨다. 상체를 쭉 펴 늘인 상태에서 힘을 실어 던지는 폼에서 약간 웅크린 듯한 자세에서 시작하는 폼으로 바꿨다. 투심 패스트볼은 공 끝의 변화량을 높이면서 땅볼을 만들어냈고, 바꾼 투구폼은 익스텐션(투구 때 공을 놓는 포인트까지의 거리)을 늘리면서 타자들의 대응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한화 불펜에 또 다른 힘을 얹은 투수는 안영명이다. 2년 전까지 선발투수로 활약했지만 올 시즌 한화의 셋업맨으로 자리잡았다. 안영명 역시 변화를 택했다. 투구 동작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투구 간격도 줄였다. 포수로부터 공을 받은 뒤 가능한 한 가장 빨리 공을 던진다. 투수는 140㎞가 넘는 공을 온 몸의 힘을 이용해 스트라이크 존 언저리로 던져야 한다. 작은 변화도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 있다. 송은범과 안영명은 변화를 택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변화는 연쇄효과를 낳는다. 외국인 투수 키버스 샘슨은 메이저리그에서 던지던 폼을 바꿨다. 왼발을 3루쪽으로 집어넣어서 던지는 폼에서 포수 쪽 방향으로 내디디면서 던지는 폼으로 바꿨다. 또다른 외국인 투수 제이슨 휠러의 키는 1m98로 매우 크다. 큰 키를 이용해 위에서 떨어뜨리듯 던지는 ‘톨앤폴’ 스타일에서 공을 조금 더 끌고 나오는 ‘드롭 앤 드라이브’ 형태로 변화를 줬다. 윤규진 역시 2군에 다녀오면서 투구폼을 바꿨다. 팔이 넘어오는 동작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던 형태였는데, 백스윙의 크기를 줄이면서 공을 더욱 앞으로 끌고 오게 만들었다. 야수진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줄을 이었다. 이성열은 안경을 쓰고 타석에 들어선다. “절박하기 때문에 뭐든지 해야 했다”고 말했다. 한화의 중심타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이다. 정근우 역시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도수가 없는 안경이다. 정근우는 “인상이 조금이라도 좋게 보이려고”라며 웃었다.
한용덕 감독 본인도 외모부터 변화
변화는 또다른 변화를 향한 도전을 낳는다. 10년 동안 가을야구를 하지 못한 팀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있어서 변화를 향한 도전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지금껏 하지 못했다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작은 변화로부터 비롯된다.
이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신임 한용덕 감독의 역할이 7할 이상이다. 신임 한 감독은 감독 부임 첫 해 ‘변화와 도전’을 목표로 내걸었다. 경기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 적극적 변화를 이끌었다. 마운드에서 투수들이 타자를 상대하는 스타일에도 변화를 줬다. 투스트라이크 노볼에서 승부를 걸 것을 요구했다. 안타를 맞더라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갖지 않았다. 한화 투수진의 볼넷이 크게 줄었다. 그 변화의 시작점에 한 감독의 외모 변화가 있다. 한 감독은 스프링캠프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뭔가를 바꿔보려 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게 외모 변화였다”고 말했다. 지금껏 한 번도 길러보지 않은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한 감독의 수염은 얼음을 만드는 ‘응결핵’ 역할을 했다. 한 감독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겪은 세상의 풍파와도 맞닿아 있다. 한 감독은 동국대 재학시절 무릎 부상으로 야구를 포기했다. 한 감독은 “야구를 그만둔 뒤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소위 ‘노가다’라 불리는 막일을 했고, 전화기 가설 전기공 일도 했다. 가장 험한 일 중 하나는 화물트럭 보조였다. 한 감독은 “트럭 보조석에 앉아 도착해서 물건 싣고 내리는 일을 했다. 그때 기사님과 참 많은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후 무릎이 나았고, 테스트를 통해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다. 구단 프랜차이즈 스타를 거쳐 지금 감독으로 이글스의 변화를 이끄는 중이다. 화물트럭 보조가 만들어낸 변화와 도전이 2018시즌 KBO리그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