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마초영화의 페미니즘적 번안 혹은 미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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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마초영화의 페미니즘적 번안 혹은 미러링

입력 2018.06.25 15:53

  • 정용인 기자

페미니스트가 재구성해낸 세계에서는 ‘마녀’는 기독교와 가부장제의 ‘여혐’에 맞서는 미러링 내지는 복수의 상징으로 되살아난다.

제목 마녀

영제 The Witch

제작연도 2018년

감독 박훈정

주연 김다미, 조민수,박희순

상영시간 12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8년 6월 27일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뭐야, Girls can do anything이네.” 영화를 중반쯤 보다 떠오른 말이었다. ‘명백히 작정하고 찍은 페미니즘 영화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출한 박훈정 감독, 작품에서 주로 담은 게 신산한 삶을 살아가는 마초의 세계가 아니었던가.

<신세계>(2013)가 그랬고, <대호>(2015), 지난해 연출한 <브이아이피>까지.

뒤늦게 지난해 작품을 두고 여혐 논란이 벌어진 것을 알게 됐다. 평론가 듀나가 선봉에 섰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난 민감한 시기여서였을까. 조금 더 찾아들어가 보니 <경향신문>에서 이 논란에 대해 영화평론가들이 갑론을박하는 특집 기획도 있었다. 꽤 큰 논쟁이었다. 그제야 이 논란을 읽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났다. 젠더 감수성이라는 잣대를 두고 생각해보니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린 각본들, <부당거래>(2010), <악마를 보았다>

(2010)의 ‘디테일한 장점들’이 바로 뒤집혀 저격 대상이 되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영화 <브이아이피>의 여혐 논란에 대해 감독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남자 제작진)가 봐도 불편한데, 여자들이 보면 더 불편할 거야’까지만 인지한 게 패착이었다. 그간 작가로서 여성 캐릭터를 못 만드는 이유가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라고는 생각했다. 근데 성(性) 감수성이 그냥 무딘 게 아니라 무지했던 거다.”(<스포츠조선> 2017년 8월) 100% 항복모드다.

여혐 논란에 대한 감독의 자기반성

시사회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는 전작의 여혐 논란과 관련, “영향이 없진 않았지만 이 작품은 <대호>를 찍기 전부터 구상하던 작품”이라며 “이 영화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담은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에 대해 말하자. 여고생 구자윤(김다미 분)은 효녀다. 귀농해 살고 있는 부모님을 대신해 트럭도 척척 몰고 읍내에 나가 외상으로 소여물도 척척 사다 나른다. 공부도 잘하고, 예쁘다. 게다가 노래도 잘한다. 엄마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인다. 소값 폭락으로 집안사정은 기울었다. 단짝친구 명희(고민시 분)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한다. 우승해 상금 5억원을 받아내면 그걸로 엄마의 병도 고치고 대학에 진학할 돈도 마련할 작정이었다. “개인기는 없냐”는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자의 질문에 “간단한 마술”이라며 마이크를 공중에 띄우는 능력을 선보인다. 그런데 눈속임이 아니라 진짜였다. 말하자면 초능력 소녀였다. 슈퍼맨의 클라크 게이블 부모들처럼 그녀를 입양한 부모들은 그 능력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TV방송을 통해 그녀의 능력을 알아보는 또 다른 사람들. 그녀가 10년 전 강원도 외딴 산골에 있던 비밀 유전자 조작 연구실을 탈출한 ‘괴물’이라는 것을 알아본 비밀조직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온다. 점점 주기가 빨라지는 극심한 두통과 함께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사람들로부터 시달리는 자윤. 협박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고, 그녀는 마침내 폭발한다.

상투적이지만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배우를 꿰찬 신인 김다미의 연기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다. 순진무구한 소녀로부터 여전사까지, 그냥 여전사가 아니라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180도 달라지는 폭넓은 성격연기는 확실히 돋보인다. 영화는 ‘Part1. subversion’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아예 시리즈로 만들어 김다미를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로 만들 작정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한 감독과 대화 시간에서 발언을 보면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럴 생각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왜 ‘마녀’일까. 옆(박스)에 쓴 것처럼 실제 세계에서 마녀는 허구의 존재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상에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 가상의 적이다.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포장해 정복, 멸실해야 하는 대상이다. 페미니즘을 떠올린 것은 그래서다. 아닌 게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재구성해낸 세계에서 ‘마녀’는 기독교와 가부장제의 ‘여혐’에 맞서는 미러링 내지는 복수의 상징으로 되살아난다.

그런데 왜 ‘마녀’일까

특이한 것은 그런 마녀 내지는 괴물을 만들어낸 이가 백발을 휘날리는 여성과학자(전형적인 ‘매드사이언티스트’ 캐릭터다) 백 박사(조민수 분)라는 것이다. 자윤의 뒤를 쫓는 두 남자 캐릭터 미스터 최(박휘순 분)나 귀공자(최우식 분)와 결투에서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그녀의 적수가 아니었다. 캐릭터들의 구상은 상투적이다. 어디서 익숙하게 본 캐릭터다. 미스터 최 얼굴에 크게 난 상처에서 <타짜>에서 백윤식이 맡은 ‘아귀’가 떠오른다. 영화의 보도자료엔 소개되지 않았지만 귀공자와 한 팀을 이룬, 미국에서 온 해결사 집단의 여성 조연(다은 분)은 아마도 <킬빌>(2003)의 여고생 행동대장 고고유바리를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인 듯하다.

제작된다면 후속편의 주요 스토리가 될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언급은 다시 이 영화의 중심 갈등이 여성과 여성, 또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전복된 모성성을 두고 벌어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감독은 인간 본성의 탐구라고 언급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페미니즘을 뒤늦게 학습한 남성 감독이 그린 마초영화의 여성적 번안 또는 미러링. 웰컴 투 아마조네스 월드.

마녀 감별법을 집대성한 책 <마녀의 망치>

중세에 보급된 마녀사냥 지침서 . | 경향 자료사진

중세에 보급된 마녀사냥 지침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 경향 자료사진

<마녀의 망치>, 또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읽다보면 빠져든다. 대부분은 억울한 죽음이었겠지만 아주 극소수, 진짜 마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미혹(迷惑)이다. 1486년에 지은 책으로 추정되는데 국내에 번역서까지 나올 정도면. 물론 지금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할 사람은 없다. 책에서 마녀의 증표로 이야기하는 분류법은 낯설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지금과 다른 에피스테메다. 성에 대한 부르주아적 도덕이 과잉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신겨진(그러니까 벌거벗은!) 식탁 다리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듯이.

마녀사냥 또는 마녀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힌 사람들의 진술은 구체적이다. 책은 때때로 저자들의 탄식을 곁들여 이것이 ‘진실’이고 마녀는 진짜로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이다. “아아, 이 모든 것이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겠나. 이 끔찍한 신성모독이 교회를 뒤흔들어 놓지 않았다면 얼마나….” 살다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가 진실 또는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의 허약한 실체다. 타계한 비전향 장기수 김진계는 그의 회고록 <조국>에서 “박헌영은 진짜 미제의 간첩”이라고 주장했다. 박헌영 본인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미군 고위관료들과 교류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김씨 자신이 참관한 재판에서 밝혀진 그의 간첩 행적들은 너무나 구체적이었고, 또 이강국 같은 인사들의 미 CIA 커넥션 역시 사실로 밝혀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6·25전쟁 직후 북조선 당국은 많은 사람들이 이 재판을 참관하도록 해 간첩행위 사실이 날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전쟁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재판이었지만.

마녀사냥이 그런 것이었다. ‘물에 빠뜨려 마녀를 확인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가라앉으면 무죄이고 떠오르면 유죄다. 가라앉아 죽거나, 떠오르면 마녀임이 틀림없으므로 화형당한다. 어떤 식이든 죽는 건 매한가지다. 기독교 문명의 흑역사지만, 유명한 이 감별법의 출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교도의 율법을 담은 함무라비 법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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