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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재혼은 사별한 아내를 배반하는 것일까

입력 2018.06.19 15:39

  •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ㄱ씨는 혼자 전처의 묘를 찾아가 이제는 이별해야 하는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전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재혼한 부인과 즐겁게 살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50대 ㄱ씨는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상담시간에 호소했다. 그는 20대 후반에 열렬한 연애 끝에 첫 번째 아내와 결혼했다. 연애만큼이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고,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잘 살았다. 아내와도 주변에서 부러워할 만큼 금실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던 부인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정밀검사 결과 부인은 간암 말기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던 ㄱ씨는 여러 병원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아내의 묘비에 꽃을 바치는 중년남성의 이미지 / wikihow

아내의 묘비에 꽃을 바치는 중년남성의 이미지 / wikihow

그 후 극진히 아내를 간호했다. 하지만 그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결국 진단을 받은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겨를도 없이 충격에 빠진 사춘기 아들과 딸을 돌보며 4년여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아내가 떠난 자리가 비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아직도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홀로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생활이 외롭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재혼한 부인과 각방을 쓰기로

사별한 지 4년도 넘을 즈음에 주위에서 재혼을 권했다. 어머니를 여읜 초기에는 혹시 아버지가 재혼을 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던 자녀들이 몇 년이 지나고 자신들도 성인이 되어가면서 혼자 사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재혼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친척은 물론이고 친지들도 좋은 여성들을 소개해주면서 “이제는 전처를 잊고 새 삶을 찾으라”고 강권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아내와 모습과 느낌이 매우 비슷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몇 번 만난 후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재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별한 아내와 모습과 느낌이 비슷하니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도 그 여성을 만나보고는 이구동성으로 어머니와 비슷해서 잘 사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적극 권하였다. 결국 그는 사별한 지 4년여 만에 재혼했다.

ㄱ씨도 마음에 드는 여성과 재혼을 해서 기뻤다. 젊어서 만나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초혼의 시절을 되풀이할 수는 없어도, 새로운 여성과 시작하는 신혼의 미래를 꿈꾸며 초기에는 행복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부인과 다정하게 지내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하며 부인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부인과의 부부생활이 뜸해지더니 마침내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부인과 한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방에서 혼자 자는 것이 훨씬 더 편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던 부인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 불만의 핵심은 자신을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재혼한 부인을 한 번도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생각한 ㄱ씨는 처음에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부인이 드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자신도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최근에는 부부동반 모임에 함께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대개의 경우 부부동반을 해야 하는 모임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경우는 혼자 갔다. 그리고 ‘부인이 아프다’ ‘부인이 다른 일정이 있다’는 등의 구실을 댔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하는 모임도 가능하면 피했다. 자녀들이 여비를 모아 여행을 가라고 권해도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로 거절하곤 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상담 초기에 그는 결코 전처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해서 현재의 결혼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재혼한 이후로는 오히려 전처의 생일까지 기억이 나지 않아, 며칠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전처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단다. 하지만 왜 특별한 불만도 없으면서 좋아하는 부인과 마음이 100% 하나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ㄱ씨는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깊은 속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ㄱ씨는 아직 심리적으로는 전처와 이별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처와의 결혼생활이 아직도 진행되는 것처럼 느끼기를 원했다. 전처와 비슷한 느낌의 여성과 재혼한 것도 결국 전처와의 결혼생활이 계속된다는 착각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부인과 행복하게 살아요”

그러니 재혼한 부인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것은 아직도 마음속으로 이별하지 못한 전처를 배반한다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더군다나 재혼한 부인과 부부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배반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부부동반 모임을 피하는 것도 그 이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ㄱ씨에게 전처의 사진을 보며 전처가 뭐라고 말하는지를 물었다. 한동안 말없이 전처의 사진을 쳐다보던 ㄱ씨는 “더 이상 나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부인과 행복하게 살아라. 당신의 마음을 아니 섭섭하지 않다”고 말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ㄱ씨는 혼자 전처의 묘를 찾아가 이제는 이별해야 하는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전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재혼한 부인과 즐겁게 살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비록 재혼을 해서 살지만 전처를 잊은 것은 아니고, 아직도 보고 싶고 그립다는 마음도 전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전처가 큰 숙제를 풀어준 것처럼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는 즉시 부인에게 상담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속마음과 전처의 묘에서 한 고백을 솔직하게 전했다.

지금까지 남편의 속마음을 몰라 속상해하던 부인은 남편의 진솔한 고백을 듣고 오해가 풀렸다. 그리고 오히려 전처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혼자 힘들어하던 남편의 모습이 측은하고 믿음직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아직도 전처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남편을 위로하면서, 전처를 완전히 잊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 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변했음은 물론이다.

재혼한 부부들과 상담하다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이 데면데면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 이유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의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그 속마음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마음 중에는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별이든 이혼이든 홀로 되었다가 재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행복한 재혼생활을 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전 결혼과 배우자로부터 심리적으로 완전히 이별하는 것이다. 심리적 이별은 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처와의 즐거웠던 결혼생활의 기억은 남아있지만 현재의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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