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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감독의 ‘보스 리더십’이 남긴 것

입력 2018.06.11 15:45

  • 이용균 스포츠경향 기자

1군 감독 13년 동안 10번이나 가을야구

김 감독은 무조건 ‘나를 따르라’ 스타일이 아니라 ‘내가 책임질테니 마음 편하게 하라’는 스타일의 경기운영이다. 중요한 순간 선수들의 긴장감을 감독이 모두 떠안는 방식이다.

김경문 전 NC다이노스 감독 / 이석우 기자

김경문 전 NC다이노스 감독 / 이석우 기자

야구경기가 모두 끝난 6월 3일 오후 10시30분. 프로야구단 NC 다이노스는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창단 후 7시즌 동안 팀을 이끈 김경문 감독이 유영준 감독대행으로 교체됐다. 구단은 ‘‘리더십 교체’라는 표현을 애써 강조했다. 이날 낮부터 소문이 돌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구체적인 디테일도 설명됐다. 갑작스런 결정은 아니었다. NC 구단 안팎의 많은 이들이 예감하던 일이었다. NC 다이노스는 구단 운영의 방향을 바꿨고, 팀 성적은 꼴찌로 떨어져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새 얼굴들을 과감하게 기용했지만, 성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NC 구단은 사령탑 교체를 결정했다. 며칠 전부터 논의되고 있던 일이 3일 경기 직전 감독에게 최종 확정 통보됐다. NC 김경문 감독의 마지막 경기는 7-8 패배였다. 9회초 1점을 내주고 9회말 2점을 따라갔지만 끝내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박민우의 적시타 때 1루주자 박광열이 3루에서 아웃됐다.

김경문 감독은 감독으로서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2004년부터 2011년 중반까지 두산 감독을 지냈고, 2012년 새로 창단한 NC 다이노스의 감독이 됐다. NC 다이노스가 2군에서 준비했던 2012시즌을 빼면, 2004년부터 2018년까지 15시즌 중 14시즌 동안 프로야구 감독을 이어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 시즌을 마저 빼고 1군에서 뛴 13시즌 중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적은 겨우 세 번. 자신이 맡은 팀을 10번이나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선수단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남달랐다. 김경문 감독이 거둔 최고의 성과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엉뚱하고 기발한 선택과 작전이 계속됐다. 일본과의 예선전 2-2로 맞선 9회초 무사 1루. 김 감독은 홈런을 때릴 수 있는 강타자 이대호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다. 그냥 강타자가 아니었다. 이대호는 이전 타석에서 동점홈런을 때린 터였다.

이대호의 보내기 번트에 이어진 2사 1·2루. 상대 투수는 일본 프로야구 최고 마무리였던 좌완 이와세 히토키였다. 좌완이니만큼 좌타자에게 강했다. 그런데 김 감독이 꺼내든 대타 카드는 왼손타자 김현수였다. 이제 겨우 프로 3년차, 청소년 대표였지만 성인 대표팀 경험은 거의 없었다. 상식을 벗어나는 듯한 과감한 작전과 기용은 일본과 다시 만난 준결승 때도 이어졌다. 준결승전 일본 선발투수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에이스 좌완 스기우치 토시야였다. 좌완 선발을 상대로 김 감독은 1~4번까지 이종욱·이용규·김현수·이승엽 등 모두 왼손타자가 들어가는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1-2로 뒤진 7회말 1사 뒤 이대호가 볼넷을 얻었다. 다음 타자는 고영민이었다. 일반적으로 경기를 뒤집기 위해 대타 카드가 상식에 가까웠다. 김 감독은 대타를 넣는 대신, 1루주자 이대호를 대주자 정근우로 교체했다. 7회말이었기 때문에 이대호는 경기에 한 타석 더 들어설 가능성이 있었다. 9회말에 경기를 뒤집어 끝낼 확률을 고려하면 이대호의 한 방 가능성이 더 높았다. 대주자로 교체되면 이대호는 다시 타석에 들어설 수 없다.

엉뚱한 듯한 기용과 작전이 거듭됐지만, 이러한 선택이 모두 맞아 떨어졌다. 일본과의 예선전 이대호의 보내기 번트는 2사 뒤 나온 왼손 대타 김현수의 적시타가 나오면서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결승점과 함께 일본전 승리를 만들어냈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나온 여러 강수들 역시 완벽하게 적중됐다. 이대호 대신 들어간 대주자 정근우는 이후 이진영의 짧은 안타 때 홈에서 기가 막힌 슬라이딩을 선보이면서 귀중한 동점 득점을 만들어냈다. 이대호가 주자로 남아있었더라면 득점이 절대 불가능한 타구였다. 이진영의 타구는 우익수 이나바 앞에 떨어졌고, 이나바의 송구가 빠르고 정확했지만 정근우는 포수의 블로킹을 피하며 왼발 끝으로 홈플레이트를 터치하는 기막힌 슬라이딩을 보였다. 대회 내내 부진했던 이승엽을 끝까지 믿고 기용한 것도 적중했다. 이승엽은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앞선 기회에서도 병살타로 물러났지만 결국 8회 극적인 결승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대표팀은 결국 결승에서도 쿠바를 꺾고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땄다.

유망주 적극 발굴 ‘화수분 야구’

김경문 감독이 보여준 기상천외의 경기운영은 뚝심과 배짱에서 나왔다. 일반적인 통념과 상식을 깨는 작전과 경기운영이었다. 왼손에 약한 왼손 대타, 홈런 타자에게 지시한 번트작전, 한 번 더 나올 수 있는 강타자의 대주자 교체. 다음에 벌어질 일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대신, 지금 상황에서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에 집중했다. 돌다리 두드리듯 뒤를 고민하기보다 지금 여기서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승부를 거는 방식에 있어서 두 가지 효과를 얻었다. 상대의 예상을 벗어나 허를 찌르는 동시에, 그 장면을 맞이하는 선수의 부담감을 줄였다.

상식을 벗어난 작전과 기용에 상대의 빈틈이 생길 수 있다. 좌완에 좌타, 거포의 보내기 번트 등은 상대의 준비에 빈틈을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작전을 수행하는 선수의 부담감이다. 의외의 작전은 수행 결과의 책임을 선수가 아닌 감독에게 향하도록 한다. 엉뚱한 작전을 내리면 그 작전을 실패해도 비난이 선수를 향하는 게 아니라 작전을 내린 감독을 향한다. 김현수가 왼손 이와세의 공을 때려 안타를 만들면 최상의 결과지만 때리지 못해도 큰 부담이 없다. 왼손에 좌타자를 낸 감독의 책임이다. 3~4년 동안 번트를 대본 적이 없는 거포 이대호도 마찬가지다. 번트를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책임은 감독의 몫이다. 실패의 부담감이 줄어든 상황에서의 작전 수행은 부담감을 줄임으로써 오히려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 스타일이 아니라 ‘내가 책임질테니 마음 편하게 하라’는 스타일의 경기운영이다. 중요한 순간 선수들의 긴장감을 감독이 모두 떠안는 방식이다. ‘보스’ 리더십이라고 평가받는다. 김경문 감독은 “감독이 욕을 안 먹으려고 하면 경기를 망친다”고 했다.

김경문 감독의 보스 리더십은 특정 몇몇 선수만을 향하지 않는다. 벤치에 있는 선수들 전체를 향한다. 김 감독은 유망주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방식을 통해 두산 감독 시절 ‘화수분 야구’를 만들었다. 김 감독은 “가장 멋지고 기쁜 경기는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이 경기 후반 좋은 활약을 해줘서 이기는 경기”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추구하는 이른바 ‘벤치 중심 야구’다. 그러나 모든 승리에는 영광에 감춰진 상처와 후유증이 남는다. 13번의 1군 시즌, 이 중 10번의 포스트시즌을 치르면서 많은 투수들이 소모됐고, 이에 따른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2018시즌의 성적 하락 역시 지난 수년간 불펜의 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이 남긴 것들은 분명하다. ‘책임을 진다는 것’의 가치가 희미해져가는 지금 ‘보스 리더십’은 유효한 측면이 있다. 10번의 포스트시즌을 치렀다는 것은 그만큼 아픈 패배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그 많은 패배들에 대해 한 번도 변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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