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쿠데타가 일어난다. 핵을 가지고도 사용하지 않는 북한1호(국무위원장)에 불만을 품어서다. 개성공단을 찾았던 북한1호의 머리 위로 살상무기 ‘스틸레인’이 쏟아진다. 치명상을 입은 북한1호는 남으로 도망온다. 쿠데타 세력은 남한에 선전포고를 한다. 남한 정부는 그를 치료해 북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전쟁을 막는다. 이런 시나리오는 몇 달 전만 해도 말이 안되는 공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남과 북의 최고 수반이 번개로 만나는 시대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가 새롭게 보이는 까닭이다.
영화 <강철비>는 남과 북을 적과 아군으로 이분화하지 않는다. 쿠데타 세력에 맞서야 하는 북한 정권과 북한 내전으로 자칫 전쟁에 휘말릴 위기에 처한 남한 정부가 공동이익을 위해 보조를 맞춘다. 영화의 원작은 2011년 웹툰 <스틸레인>이다. 이 웹툰의 글작가가 양우석 감독이다.
통상 한국영화에서 북한 특수요원은 당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하지만 엄철우(정우성 분)는 아니다. 그는 ‘가족을 공화국을 지킨 영웅가족으로 대접하겠다’는 거래를 제안 받고 사건에 뛰어든다. 쿠데타를 막으면 그의 아내와 딸은 쿠바 대사관에서 일할 수 있다.
북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당과 수령을 위해 무한충성을 보내는 것은 옛말이다. 사유재산에 눈을 뜨고 있고, 개인의 이익을 중시한다. 이런 성향의 2030을 ‘장마당세대’라고 부른다. 북한판 밀레니얼 세대로 북한 인구의 절반쯤 된다.
장마당이란 시장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배급체계인 북한에는 원래 시장이 없다. 장마당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낳은 산물이다. 당시 김일성 주석 사망, 소련 붕괴, 가뭄과 추위 등이 겹치면서 북한의 배급망이 붕괴됐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람들은 갖고 있는 것을 뭐라도 팔아서 식량을 구했다. 장마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2003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시장을 인민 생활에 편리하고 나라의 경제 관리에 유리한 경제적 공간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방침’을 제시하며 장마당을 공식 인정했다. 2018년 기준 북한 전역에 공인 받은 장마당만 500개에 육박한다. “달러만 주면 탱크도 구해준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장마당은 활성화됐다. 생필품부터 전자제품, 휴대전화까지 없는 게 없다고 한다. 영화 속 엄철우는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는 한 장마당에서 약을 거래하고, 돈을 주고 깽깽이국수(잔치국수)를 사먹는다.
장마당에서 물품을 사고 팔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사금융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일부는 북한식 신흥자본가로 성장했다. 이른바 ‘돈주’다. 돈의 주인이란 뜻이다. 돈주들은 고리대금 이자놀이부터 부동산, 유통, 무역, 심지어 밀수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 전체 경제에서 시장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유럽에서 공부하며 자본주의를 접했다. 김 위원장이 장마당을 적극 지원하는 배경이다.
다시 영화 속으로 가보자. 엄철우의 딸 인영은 지디(지드래곤)의 팬이다. <삐딱하게>를 좋아한다. 엄철우는 “남조선 노래를 듣는 거이 아바지 어마니 죽창치는 거야”라며 화들짝 놀라지만 대세를 막을 순 없다. 남한의 대중가요와 드라마는 장마당을 통해 북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남과 북은 가까워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