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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중년 부부가 각방을 쓰는 이유는 뭘까?

입력 2018.06.04 15:44

  •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각방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의 잠버릇이 심해서(27%)’, ‘육아 때문에(26%)’, ‘부부의 활동시간대가 달라서(25%)’ 등 부부의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각방을 쓰는 부부가 전체의 78%나 된다.

pixabay niekverl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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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선>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부부들의 약 절반이 각방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2017년 3월).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해를 넘기지 말고, 어떤 일이 있어도 침실은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충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부부는 꼭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Out of sight, out of mind(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격언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섹스리스’ 부부가 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다.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다는 우리나라이고 보니 그런 염려를 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각방을 쓰는 표면적인 이유만 보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각방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의 잠버릇이 심해서(27%)’, ‘육아 때문에(26%)’, ‘부부의 활동시간대가 달라서(25%)’ 등 부부의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각방을 쓰는 부부가 전체의 78%가 된다.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9%)’ 각방을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경우 많아

각방을 쓴 후 ‘변화가 없다(57%)’는 부부가 많지만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14%)’는 부부보다는 ‘소원해졌다(29%)’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각방을 쓰는 결정은 부부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완전히 합의된 후에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부부관계가 세상의 모든 다른 관계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100% 용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호받는 성관계를 자유스럽게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문화에서도 다만 그 횟수나 방법이나 기간 등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지만 부부 간의 성관계를 죄악시하거나 금기시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부부 간의 쾌락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종족의 유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년부부들을 상담하다보면 성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갈등의 핵심은 부부 중 한 명이 상대방이 원하는 만큼의 성적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가 상담 받으러 와서 처음부터 자신들이 성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쉽게 꺼내는 부부는 오히려 건강한 부부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기 때문에 상담의 효과도 좋다.

하지만 대개의 부부들은 그럴 듯한 다른 원인들을 내세운다. 이 원인이 사실인 경우도 물론 많이 있다. 부부 간의 모든 불화의 원인이 성적 불만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으로는 만족하지만 다른 이유로 얼마든지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위에 인용한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각방을 쓰면서 오히려 부부관계가 더 좋아진 부부도 14%나 된다. 비록 성적인 불만족이 부부 간의 불화의 주요한 이유라고 할지라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즉, 무의식으로 억압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억압하는 이유는 아무리 부부라 할지라도 성에 관련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억압하는 한국 문화의 특성상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에 심한 저항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가부장적인 한국 문화를 강하게 내면화한 남편이나 정숙한 여성상을 마음속에 내면화하여 성을 심하게 억압하고 있는 부인들이 그렇다.

부부 간에 만족한 성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한다. 제일 먼저 풀어야 할 오해는 ‘성’에 대한 정의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性)’ 혹은 ‘성관계’는 ‘이성(異性) 간의 성교(性交)’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성인 남녀가 성기를 결합하여 육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부부 간에 일정 기간 성교를 하지 않으면 소위 ‘섹스리스’로 분류된다.

이 정의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관계를 너무 협소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성교’가 부부 간의 성관계에서 제일 핵심적이고 자극적이며 강한 만족을 주는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성관계는 아니다. 사실 ‘성’은 넒은 의미로는 ‘신체적인 즐거움’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성을 이렇게 넓게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부부의 즐거움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여성용 화장실에 몰래 숨어서 훔쳐보는 행동을 하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변태성욕자’(變態性慾者)라고 부른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성적 욕망을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이성의 몸을 보려는 것도 성적 욕망의 하나이고, 즐거움을 주는 행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변태’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부 간의 성관계를 좁은 의미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부부 간의 성관계는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이것도 얼마든지 바람직한 성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산책을 하는 것보다 손잡고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며 걷는 부부는 물론이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아름답게 느끼는 이유는 그 관계가 ‘손잡는’ 신체적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손을 잡거나 신체적인 접촉을 하지 않아도 서로 상대방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얼마든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예술, 특히 누드화를 감상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그런 행위의 저변에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활동이 ‘성적 욕망’이 승화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즐거움을 대해 정상적이지 못한 행위로 만족하려고 할 때 ‘관음증’(觀淫症)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부부 간의 원만한 결혼생활이 한 가지 양식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시대는 지났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린 자녀의 양육 때문에 각방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시절의 ‘성교’를 중심으로 하는 성관계도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부부 간의 합의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부부 간의 성은 단순한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 간 친밀함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부부 간의 친밀도는 원만한 결혼생활의 바로미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성적 만족을 느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한 성교의 빈도로 성관계를 이해하려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부 간에는 다양한 성생활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다만 부부 간의 자발적인 합의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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