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유명 여배우이기 이전에 유대인, 이민자, 그리고 여성이라는 굴레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힘겹게 살아온 한 인간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제목 밤쉘 (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
제작연도 2017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89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알렉산드라 딘
출연 헤디 라머, 다이앤 크루거, 니노 아마레노, 멜 브룩스
개봉 2018년 6월 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겉보기와 달리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팬들의 사랑과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의 삶이란 게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대중의 인기를 누리며 주목받는 연예인의 삶을 동경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잃게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욕망은 사후에도 자신의 존재가 잊히지 않고 기억되길 바라는 인간의 본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자 부단히 매진하고 조금이라도 남다른 성취를 이뤄내길 꿈꾼다. 자손을 낳아 양육하는 것도 결국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본성의 생물학적 발현이란 해석도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육신이 소멸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회자된다는 것, 또 나의 혈족들이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유한의 존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배우 ‘헤디 라머’(Hedy Lamarr 1914∼2000)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영화 <밤쉘>은 섹시함의 대명사로 194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여배우 헤디 라머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명성을 쌓은 배우로서의 삶은 물론, 더불어 대중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소소한 개인적 이야기까지 두루 들춰낸다.
2차 대전과 질풍노도의 전성기
1914년 11월 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헤디 라머는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아름다운 외모로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주변인들은 그녀가 어려서부터 작은 오르골을 분해했다 조립하는 등 기계와 그 작동원리에 호기심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10대에 베를린으로 가 유명한 막스 라인하르트 연기학교에 다녔고 18세가 되던 해에 구스타프 마차티 감독이 연출한
<엑스터시>(Ecstasy. 1933)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성애묘사와 노출로 논란이 된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다. 얼마 뒤 군수업체 사업가 프리츠 만들(Fritz Mandl)과 결혼해 한동안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지만, 남편의 지나친 간섭과 의처증세로 불행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국 그녀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 남편에게서 도망쳐 영국으로 건너간다. 어느 날 영국에 출장 온 MGM 영화사의 대표 ‘루이 B. 마이어’와 마주친 라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의 눈에 드는 데 성공하고 미국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남다른 외모에 주목받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며 살아야 했던 라머는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었고 결혼과 파경을 반복하는 순탄치 않았던 사생활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2차 대전이 절정에 이를 즈음 아군 어뢰의 무력화로 나치의 잠수함에 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녀는 절친한 작곡가 ‘조지 앤타일’이 언급한 자동연주 피아노에서 영감을 얻어 주파수를 88개로 쪼개어 통신보안을 강화하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함께 착안해 낸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실용화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이는 현대 무선통신과 와이파이, 블루투스 기술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유명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삶
미모의 여배우의 과학적 성취라는 점에서 사회 통념적 모순의 대표적 아이콘이 된 헤디 라머의 이야기는 사실 오래전부터 회자되며 알려진 이야기였다. 한 기자와 나눴던 전화 인터뷰 카세트테이프가 비교적 최근에야 우연히 발견되면서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의문에 직접 답한 그녀의 육성이 공개되었고 영화는 이를 적극 활용한다. 영화는 그녀의 삶의 족적을 너무 부지런히 쫓다 보니 다소 산만하고 가볍다는 인상도 남기지만 결국 유명 배우이기 이전에 유대인, 이민자, 그리고 여성이라는 굴레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힘겹게 살아온 한 인간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보편적 깨달음과 교훈으로 직결된다. 적어도 이 작품은 헤디 라머라는 한 인물의 인생을 다시 조명하고 그녀를 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데는 성공했다. 더불어 그녀를 화려한 조명을 받던 인기배우이자 많은 고통과 아픔에 힘겨워했던 보통의 사람임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영화를 담아내는 시선과 탄성이 진실의 조각일 뿐이란 점 또한 분명히 견제해야 할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특별한 불꽃을 가지고 있다. 헤디 라머의 삶을 통해 관객들이 저마다의 불꽃을 찾길 바란다”고 이 영화를 감독한 여류연출가 알렉산드라 딘은 말한다. 그녀의 말이 상당 부분 진심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사실 웬만큼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 해도 요즘 관객들에게 ‘헤디 라머’라는 이름은 낯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할리우드 섹시 심벌을 언급할 때 40년대는 헤디 라머, 50년대는 마릴린 먼로라 지칭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중 한 명이다. 그녀의 등장 이후 할리우드 여배우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흉내낸 5:5로 정갈하게 나눠 빗은 가르마 머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월트 디즈니에서 만든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에서의 백설공주의 외모와 <배트맨>에 등장하는 캣 우먼의 모델도 그녀였다. 소위 요즘 매력적인 여자를 칭할 때 흔히 쓰는 ‘잇 걸’(It Girl)이란 단어가 제대로 어울리는 인물이라 할 만하다.
어린 나이에 출연한 데뷔작 <엑스터시>부터 섹시함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녀의 연기인생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유사한 이미지로만 소비되었다. 할리우드로 건너가 어렵게 연기활동을 재개했을 때도 한동안 그녀에게는 별볼 일 없는 작은 배역만 주어졌다. 1940년 잭 콘웨이가 연출하고 클라크 게이블, 스펜서 트레이시, 클로데트 콜베르와 출연한 <붐 타운>(Boom Town)은 그녀에게 새로운 전기가 된 작품이다. 그녀가 클라크 게이블을 뇌쇄적으로 유혹하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기억되는 작품은 역시 ‘세실 B. 드밀’ 감독의 <삼손과 데릴라>(1949)다.
헤디 라머는 1970년대에는 방송인터뷰에서 자신이 꾸준히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제작자의 성상납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충격적 고백을 했는데, 덧붙여 대부분의 성공한 여배우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발언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녀는 빈번한 성형으로 인해 앓게 된 후유증으로 말년에는 가족조차 멀리할 정도로 심한 대인 기피증을 보였다. 오랫동안 쓸쓸한 은둔생활을 하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고향인 오스트리아와 빈을 그리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