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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내 몸인데 내 맘대로 못하게 하는 남편

입력 2018.05.28 14:02

  •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부부 일심동체’라는 고리타분한 옛말

어느 날 ‘엄마가 혹시 신장이 더 악화되면 내 신장을 하나 드릴 거야’ 라고 확고한 의사를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대뜸 ‘왜 나랑 상의 한마디 없이 당신 몸을 당신 맘대로 결정하느냐’고 볼멘소릴 해서 황당했단다.

2016년 9월에 열린 제 20회 장기기증의날 행사에서 장기기증인의 캐리커쳐로 만든 ‘생명의 벽’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 서성일 기자

2016년 9월에 열린 제 20회 장기기증의날 행사에서 장기기증인의 캐리커쳐로 만든 ‘생명의 벽’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 서성일 기자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모임이 있다. 중년의 여성들이 모여서 공통된 가치관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모임이다. 며칠 전 행사로 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그 운동의 취지와 방법을 듣는 기회를 갖게 됐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누는 기회는 처음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100세 시대를 살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동시에 잘사는 것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의미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진 것 같다. 잘사는 것(Well-Belng)이 잘죽는 것(Well-Dying)이 됐다. 이렇듯 죽음과 관련된 얘기는 곧 삶에 대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단어가 주는 중압감이 분위기를 다소 무겁게 했다. 5월의 바깥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이런 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이 어딘지 어색했지만 우리들은 화창한 날에 우산을 준비해야 됨을 아는 나이가 이미 됐다.

“요즘은 매장보다는 점점 화장들을 많이 하시는 추세로 한두 시간 후면 한줌의 재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허무하지요. 그런데 누군가 애타게 삶의 끝자락을 붙잡은 사람에게 사후 장기를 기증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내자의 한마디가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한두 명이 기증서약서에 서약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러나 장기 기증은 결국 나의 의지보다는 가족들의 동의가 중요합니다.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리 당사자가 원했어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 서약서를 작성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가족들의 협조를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다만 지금 작성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기증서약서에 서약을 하며 서로 의미 있는 삶으로 마감하자고 독려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처음의 다소 무겁고 불안했던 마음들이 가벼워졌다.

그때 누군가 남편과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결혼 전부터 친정엄마가 신장염을 앓아서 언젠가 필요하면 자신의 신장을 드릴 각오를 하고 있었단다. 어느 날 “엄마가 혹시 신장이 더 악화되면 내 신장을 하나 드릴 거야”라고 확고한 의사를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대뜸 “왜 나랑 상의 한마디 없이 당신 몸을 당신 맘대로 결정하느냐”고 볼멘소릴 해서 황당했단다. 물론 생명을 살리려는 그녀의 착한 마음으로 결심한 일이지만 그녀의 선한 의도가 결과로 연결되기까지는 자신의 의지만이 아니라 가족의, 특히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고리타분한 옛말을 들먹이는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요즘같이 자유분방한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5월엔 주말마다 결혼식이 한창이다. 이렇게 화창한 계절에 아름다운 신랑 신부들이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는 모습이 눈부시기까지 하다. 그리고 모든 주례사마다 두 사람이 이제부터 한 몸이 되었다고 선포하면 두 사람은 드디어 많은 하객으로부터 수많은 축하를 받는다. 당사자들 역시 그 한마디를 듣고서야 드디어 키스도 공개적으로 하고 어디든 떳떳하게 함께 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 부부가 한 몸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부부는 비로소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체가 된 것이다.

이렇듯 배우자와 일심동체라면 당연히 서로 상의하고 결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즐기는 위험한 스포츠를 아내의 동의도 없이 고집부리는 남편들이 있다. 그런 아내의 고통은 참으로 크다. 그녀는 남편이 해외 산악 등반에서 돌아오기까지 마음을 졸이다 못해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지만 남편이 하는 말은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전부란다. 걱정이 되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남편이 야속하단다. 또한 어떤 부인은 자신의 얼굴이 맘에 들지 않아 성형수술을 하고 싶은데 남편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성형수술은 절대 안된대요. 내가 들고 다니는 얼굴을 내가 맘에 안 들어서 고치겠다는데 왜 남편이 참견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얼굴인데 내 맘대로 못하게 하는 남편이 야속했겠어요. 혹시 남편의 얘기를 들어봤어요?”

“그럼요. 위험하다고 안 된대요. 만약 의료사고라도 나면 당신이랑 우리 가족은 큰일난다며 지금도 예쁘니 괜찮다고 얼버무려요. 아니 자기가 괜찮으면 뭐 해요. 내가 괜찮치 않은데.” 그녀는 눈물을 글썽인다. “저도 막상 턱뼈 깎을 생각하면 굉장히 두려워요. 내 몸에 칼 대는 건데 저라고 안 무섭겠어요. 그런데 TV에서 예쁜 연예인을 남편이 넋을 놓고 바라보면 약 오르고 불안해져요. 자꾸 자신감 떨어지며 주눅 들고 괜히 그 여자를 헐뜯고 심통을 부리는 저를 보게 돼요. 추하죠. 더군다나 예쁜 애들이 말도 예쁘게 하고 마음까지도 예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외모가 예뻐지면 남편한테 공연히 심통 부리지 않고 사이가 좋아질 것 같고, 그러면 자연히 아이들에게도 부드럽게 말할 것 같아요.”

남편의 진짜 속마음은 뭘까?

그녀의 가슴 깊은 마음은 남편과 더 가까워지고 싶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거였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마음도, 남편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남편의 진짜 속마음을 들을 기회조차 만들지 않았다. 남편이 연예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정말 어떤 마음인지, 막연히 예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스스로 왜곡된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홀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부부의 관계와 가정을 회복하고 싶어했다. 수년 전 화창한 봄날에 하객들 앞에서 울려퍼졌던 ‘부부가 이제 한 몸 되어 함께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간다’는 선포와 행진은 화려한 조명이 꺼짐과 동시에 길을 잃고 말았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상대를 한 몸으로 생각한다. 상대에게 닥친 불행은 곧 나의 아픔이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듯 상대에게 혹시 일어날지 모를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은 게 부부의 마음이다. 그러나 한 몸인 것에 익숙한 나머지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조율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 같다. 충분히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주고 또한 나의 마음을 나눌 때 훨씬 상대와 ‘일심’의 단계에 이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비로소 온전히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그때 그 시절의 주례사가 빛을 발하게 된다. 눈부셨던 아름다운 신랑 신부가 아니라 은은히 향기로운 부부로 말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이 천천히 지나간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기증서약서 쓰기를 멈췄다. 대신 또 한 장의 약정서를 슬며시 집어들었다. 그리곤 쓰다만 나의 약정서와 함께 곱게 접어 가방에 밀어넣었다. 오늘 저녁엔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 매운탕이라도 끓여놓고 조촐하게 얘기를 꺼내봐야겠다. 우리의 사후 계획도 슬쩍 끼워넣으며 말이다. 그래서 사후에도 내가 또는 남편이 서로 우리의 의견을 소중하게 지켜주며 그 옛날 주례사를 더듬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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