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방송가에는 ‘일베 경계령’이 떨어졌습니다. ‘일베’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산한 이미지가 뉴스와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베’는 원래 인기 커뮤니티의 게시판 이름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자극적이고 심지어 패륜으로 여겨지는 유해 콘텐츠가 모이는 커뮤니티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게시물을 비롯해 여성이나 특정 지역 출신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콘텐츠를 생산,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예가 중계> |KBS
이곳에서 만들어진 교묘하게 조작된 이미지들은 어느 때부터인가 방송 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도 그 사례가 있었습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은 이영자씨가 어묵을 먹는 장면을 뉴스 화면인 것처럼 패러디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 모자이크가 된 세월호 참사 당시의 화면이 사용됐습니다. 자막에는 ‘어묵’이라는 용어가 나왔습니다. 어묵은 ‘일베’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돼 왔습니다. 어찌 보면 누군가가 어묵을 먹는 단순한 장면이 교묘하고 거대한 조롱으로 기능한 것입니다. MBC 최승호 사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곧바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자초지종을 따졌습니다. 의도성이 있지는 않았다는 결론에는 도달했으나 여러 단계의 ‘게이트 키핑’ 과정에 대한 우려와 실망감이 드러났습니다.
KBS는 5월 18일 방송에서 MBC의 이 같은 사고를 지적한 <연예가 중계>를 방송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베’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이 장면에서도 일베가 이미지를 왜곡해 퍼뜨린 러시아월드컵 이미지를 사용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은 다른 소식을 전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실루엣이 등장하는 이미지를 또 사용했습니다. ‘일베’의 문제를 지적하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두 차례나 ‘속아 넘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셈입니다.
<전지적 참견 시점> | MBC
방송사들이 조작된 이미지를 별 생각 없이 사용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베’는 두 전직 대통령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장면을 삽입한 다양한 자료나 이미지들을 화소가 좋고 깔끔한 이미지로 제작해 온라인에 ‘뿌려’ 둡니다. 프로그램 제작에서 자료나 이미지를 조사하는 제작진들이 포털사이트를 통해 이미지를 검색해 사용한다는 점을 노린 것입니다. 화소가 높고 깔끔한 이미지는 제작진들에게 늘상 필요한 자료입니다. 게다가 방송에 임박해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적절한 검증이 이뤄질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어떤 이유나 변명을 대더라도 부족합니다. 실수로 보아 넘기기에는 그 빈도도 너무나 잦았고 표현의 정도도 심각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으로, 다시금 살피는 마음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임하는 제작진들의 경계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