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열렸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 중 하나는 9일 개막식이었다. 당시 개막식에서는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궁금증이 커졌다. 그리고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었던 ‘피겨 여왕’ 김연아가 예상대로 마지막 주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단순히 성화에 불을 붙였던 모습과 달리 김연아는 스케이트화를 신고 나섰다. 그리고 짧게 은반 위를 수놓아 전세계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김연아가 모처럼 피겨를 선보인 날이었다. 여왕다운 우아한 성화 점화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2월 9일 김연아가 성화대에서 점화 준비를 하는 모습./이석우 기자
그리고 김연아가 그의 피겨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선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김연아는 5월 20~22일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SK텔레콤 올댓스케이트 2018’에 특별출연해 새 갈라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현역생활을 마친 뒤 4년 만에 선보이는 갈라 프로그램이다. 새 프로그램 음악은 영화 ‘팬텀 스레드’ OST 중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구성된 ’하우스 오브 우드코크’다.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멀티 아티스트로 불리는 조니 그린우드가 작곡한 곡으로, 로맨틱하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다. 현역시절 내내 김연아와 함께 해온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 안무를 맡았다. 김연아는 “영화를 보며 음악이 좋다고 생각해 왔고, 이번에 갈라 준비를 하며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에게 이 곡을 포함해 몇 곡을 추천한 뒤 함께 결정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모처럼 은반 위로 돌아온 김연아의 새 갈라를 기대하면서 앞서 그가 선보인 갈라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연아가 선보인 역대 갈라 중 의미가 담긴 프로그램들을 선별했다.
2009년 ISU그랑프리 5차 대회 쇼트프로그램./이석우 기자
2006~2007시즌 ‘리플렉션(reflection)’
김연아의 첫 시니어 데뷔 시즌인 2006~2007시즌에 선보인 갈라 프로그램이다. 유명 팝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나가 부른 곡으로 한국에도 유명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갈라 프로그램은 김연아의 지도자이자 ‘킹메이커’인 브라이언 오서가 안무를 맡아 관심을 모았다. 김연아는 이 시즌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화 ‘물랑루즈’의 OST인 ‘록산느의 탱고’에 맞춰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71.95점으로 쇼트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1위를 차지했다. 허리 부상으로 고생했던 시즌임에도 이뤄낸 쾌거였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점프에서 실수를 해 종합 3위를 거뒀지만 동메달을 따면서 첫 시니어 시즌을 마무리했다. 영화 ‘뮬란’에서 주인공 뮬란은 실의에 빠져서 언제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리플렉션을 부른다. 이 곡을 갈라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김연아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세계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김연아가 2012년 독일에서 열린 NRE트로피 시니어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를 펼치는 모습./경향 DB
2007~2008시즌 ‘온리 호프(Only hope)’
김연아가 아픔과 영광을 동시에 안았던 시즌이다. 2007~2008시즌 김연아는 그랑프리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해 지난 시즌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고관절 부상이 김연아를 힘들게 했다.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 참가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는 5위에 머물렀으나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진통제 투혼을 발휘하며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당시 편파판정으로 논란을 빚은 아사다 마오가 우승을 차지했고 김연아는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 시즌에서 선보인 갈라 프로그램 음악은 김연아가 직접 선정한 곡이었다. 직접 웹서핑을 하다가 노래를 들은 김연아는 자신의 장기인 섬세한 감정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갈라로 김연아는 ‘소녀’에서 ‘숙녀’로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시니어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경향DB
2009~2010시즌 ‘타이스의 명상곡’
김연아가 개인적으로 꼽은 최고의 갈라 프로그램이다. 2009~2010시즌은 김연아가 ‘여왕’으로 등극한 시즌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는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로 쇼트프로그램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1위를 기록했고 프리스케이팅에서도 150.06점으로 총점 228.56점으로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하며 압도적인 점수차로 우승했다.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김연아는 금빛 갈라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타이스의 명상곡은 쥘 마스네가 1894년에 발표한 오페라 ‘타이스’에 삽입된 곡이다. 올림픽 챔피언으로서 가장 어울릴 만한 갈라 프로그램을 찾던 중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의 추천을 받고 이 곡을 선택했다. 그리고 김연아는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올림픽 챔피언다운 갈라를 선보였다.
2013~2014시즌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2013~2014시즌은 선수로서 김연아의 마지막 시즌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한 김연아는 올림픽 시즌에 걸맞게 준비를 했다. 발목 부상으로 위기가 오는 듯했으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면서 올림픽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올림픽에서도 쇼트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며 여왕의 귀환을 알렸다. 프리스케이팅에서 클린 연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은메달을 차지했고 러시아의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판정 논란이 일었다. 김연아는 메달 색깔에는 관계 없이 선수생활을 마친 것 자체에 감사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수로서 김연아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갈라 연기는 지켜보는 이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영국 팝가수 존 레넌이 1971년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발표한 ‘이매진(Imagine)’에 맞춰 김연아는 피겨팬들과 작별을 했다. 순백의 의상을 입고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동작을 선보인 김연아는 기립박수와 함께 은반 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