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의 야구’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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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의 야구’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입력 2018.05.14 13:54

  • 이용균 스포츠경향 기자

내년 시즌 복귀 가능성 밝혀

그는 이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의 보증수표라 불리는 3000안타를 달성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때린 통산 안타가 3089개다. 1420득점과 도루 509개를 함께 세웠다.

LA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는 지난 5월 7일 시애틀과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앞선 두 차례의 부진했던 투구를 씻어내는 호투였다. 6이닝 동안 홈런 한 방 포함 6안타를 내줬고, 실점을 2점으로 최소화했다. 팀 타선이 일찌감치 폭발하면서 경기는 8-2로 이겼다. 오타니는 승리투수가 됐다. 두 번째 등판이었던 4월 9일 승리에 이어 거의 한 달 만에 시즌 3승째를 따냈다. 괴롭혔던 손가락 물집도 이날은 없었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스즈키 이치로가 3000안타 기록을 세운 2016년 8월 관중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마이애미 말린스의 스즈키 이치로가 3000안타 기록을 세운 2016년 8월 관중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기분 좋은 승리였지만 오타니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이 날이 같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소속 시애틀과의 경기 첫 등판이었는데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데뷔 후 소원 중 하나는 자신의 영웅이자 일본 프로야구 전체의 영웅, 스즈키 이치로와의 대결이었다. 이치로의 소속팀 시애틀과의 경기에 이치로가 나오지 않았다. 맞대결이 불발됐다. 이치로가 바로 며칠 전, 시애틀 로스터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치로(45)는 사흘 전이었던 4일, 더 이상 선수가 아닌 신분이 됐다. 이치로는 선수에서 프런트로 변신했다. 이치로의 소속팀 시애틀은 이날 이치로가 남은 시즌 선수로 뛰는 대신 구단의 특별보좌역을 맡아 일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치로는 이날 로스터에서 제외됐다.

그렇다고 유니폼을 완전히 벗는 것은 아니다. 이치로는 남은 시즌 동안 선수단과 함께 한다. 경기 전 워밍업과 타격훈련에도 참여한다. 경기 전 전력분석 미팅도 하고, 라커룸에서 함께 지낸다. 달라지는 것은 로스터에 없기 때문에 경기에 뛰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대신 이치로는 선수들에게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한다. 스캇 서비스 시애틀 감독 역시 베테랑 이치로의 존재가 팀 분위기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치로는 “시애틀 동료들과 함께 한 지난 두 달 동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언젠가 내려와야 할 때가 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애틀이라는 팀이 내게 기회를 준 것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은 시즌 선수로 뛰지 않지만 완전히 은퇴한 것은 아니다. 이치로의 에이전트는 “내년 시즌 새로운 팀에서 뛸 수 있다. 은퇴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MLB.com은 내년 3월 도쿄돔에서 열리는 시애틀-오클랜드의 개막 2연전에 이치로가 나설 가능성을 언급했다. 해외에서 치르는 개막전은 엔트리가 28명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오타니의 소원이었던 맞대결은 불발됐지만 그라운드에서의 만남은 이뤄졌다. 에인절스와 시애틀의 시리즈 첫날이었던 지난 5일, 야구장에 나온 오타니가 1루쪽 시애틀 더그아웃 앞으로 뛰어갔다. 저 멀리 이치로가 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조용히 찾아간 오타니가 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인사를 하려는 순간 이치로가 휙 돌아서더니 슬금슬금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시 장난을 친 이치로가 오타니를 향해 돌아섰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환하게 웃었다. 오타니는 악수를 청하는 이치로의 손을 잡으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MLB.com은 “이치로가 환하게 웃었다”고 전했다. 이치로는 좀처럼 웃는 법이 없는 선수였다. 야구에 모든 것을 바친 야구의 ‘구도자’였기에 웃음을 찾아보기는 그만큼 어려웠다. 미국 스포츠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2005년 이치로에 대해 “그를 타격왕 후보로 올려놓지 않는 것은 PGA투어에서 타이거 우즈를 우승후보로 꼽지 않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ESPN은 “이 선수를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세대에 주어진 특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철저하게 궁극의 야구를 추구했던 선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공원에서 항상 아버지와 야구 연습을 했다. 초등학교 때 동네 타격연습장에는 이치로 전용 연습장이 생겼다. 그때부터 시속 100㎞짜리 공을 때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동체시력을 높이기 위해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글자나 숫자를 판별하는 훈련을 했다. 이치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글짓기에 “나의 꿈은 일류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3살 때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는 365일 중 360일 동안 강도 높게 연습하고 있다. 따라서 일주일 중 친구와 놀 수 있는 시간은 5~6시간 사이다”라고 적었다.

자기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했다. 하루하루 생활이 판에 박힌 듯 진행된다. 아침식사는 항상 똑같다. 프로 데뷔 후 2010년까지는 매일 카레. 이후에는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식빵과 국수를 먹는다. 경기장에는 항상 5시간 전에 도착하는 게 원칙이다. 원정경기 때는 숙면을 위해 전용 베개를 챙긴다. 경기 전 다른 사람의 글러브와 배팅 장갑을 만지지 않는다. 손에 그 감각이 남아 자신의 감각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휴가를 가서 몸을 편안하게 쉬면 루틴을 망칠 수 있다고 여긴다. “소파에서 하루종일 뒹굴거리면 몸이 더 쉽게 피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몸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트레이닝 머신을 개발했다. 하루 4번, 정해진 시간 동안 머신을 이용해 운동을 한다. 20년 동안 빼먹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때도 이 장비를 컨테이너에 실어 갖고 간다. 장비가 생기기 전에도 훈련은 필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와의 약속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한 뒤 2001년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때 주변의 반대와 우려가 적지 않았다. 스윙과 함께 1루쪽으로 달려나가는 듯한 타격폼으로는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과 수비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일본 내에서도 “머지않아 일본에서 슈퍼스타로 남을 걸이라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적응을 넘어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시애틀에 입단했고 첫 해 무려 242안타를 때렸다.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2004년에 세운 한 시즌 262안타는 조지 시슬러가 1920년 기록한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257개)을 무려 84년 만에 깨뜨렸다. 이치로의 야구에 대한 구도자적인 태도는 꾸준함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 이치로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연속 3할, 200안타, 올스타 선발, 골든글러브 수상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메이저리그 데뷔가 늦었던 탓에 20대 초반부터 세운 기록이 아니라 27세부터 36세까지 만들어낸 기록이었다.

그는 이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의 보증수표라 불리는 3000안타를 달성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때린 통산 안타가 3089개다. 1420득점과 도루 509개를 함께 세웠다.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3000안타 이상 기록한 선수는 32명. 이 중 500도루를 넘긴 선수는 이치로를 포함해 겨우 7명이다. 일본에서의 안타 1278개를 더하면 4367개로,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안타(피트 로즈, 4256개)를 뛰어넘는다. 이치로의 꾸준한 기록은 야구라는 종목, 궁극의 이데아를 찾아가는 노력에서 나왔다. 이를 위한 철저한 자기관리가 바탕이 됐다. 이치로는 “나와의 약속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야구장에서 좀처럼 웃지 않는 그가 오타니를 보고 환한 웃음을 보인 것은 그래서 특별했다. 물론, 이치로의 야구가 이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이치로는 아직 은퇴시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은퇴를 고려할 때”라고 한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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