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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집이 세금 덜 내는 공시가격의 현실

입력 2018.05.08 10:18

  •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서울지역에서 9억원 이상에 매매되었으나 공시가격이 9억원 미만인 아파트는 65%에 달한다. 3분의 2가 공시가격의 허술함으로 인해 종부세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조세정의에 반한다.

세금은 민감한 주제이다. 특히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다. 집에 관한 세금은 사고팔 때 내는 양도세, 취득세, 각종 채권 등이 있다. 평상시에도 재산세가 부과된다. 9억원 이상의 집에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도 부과된다. 이때 부과되는 세금 기준은 집이 거래되는 실제 가격이 아니라 ‘공시가격’을 적용한다.

부동산중개업소 유리창에 매물 시세와 현황을 알리는 광고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부동산중개업소 유리창에 매물 시세와 현황을 알리는 광고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실제가격과 공시가격이 매우 많은 차이가 있다는 데 있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부동산 가격 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모든 주택과 토지에 대해 ‘적정가격’을 공시해야 한다. 적정가격은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질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수준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정부는 부동산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에 대한 방대한 공공데이터가 있음에도, 두 가격의 차이를 모니터링하거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데이터가 있지만 안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구가 이익 많이 보는 제도

4월 3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2018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현실화를 요구하는 ‘공동주택가격 의견서’를 국토부와 한국감정원에 제출했다. 이 의견서는 국토부가 고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의견수렴 절차에 따랐다.

참여연대가 2017년 거래된 초고가 공동주택(아파트, 연립·다세대)을 조사한 결과, 해당 부동산의 2018년 공시가격은 여전히 실거래가의 3분의 2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도 누진율이 적용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반값에도 못 미치는 세금을 낼 수도 있다.

특히 2017년 거래된 서울 아파트를 구별로 살펴본 결과, 실거래가가 높은 지역일수록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은 낮은 경향을 보였다. 강남구 등 땅값이 높은 곳이 이익을 더 많이 보는 셈이다. 서울 전체로 보면 같은 기간 실거래가 반영률은 72.5%에서 65.6%로 하락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2018년 공시가격 역시 실거래가에 비해 매우 낮다. 2017년 실거래가가 20억원 이상인 공동주택 약 200호의 2018년 공시가격을 조사한 결과, 공시가격은 2017년 실거래가의 64.5%에 불과했다. 평균 실거래가가 10억원 이상인 공동주택단지 20곳의 2018년 공시가격은 2017년 실거래가 대비 70.9% 수준이다. 이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거래된 공동주택 229만여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은 2013년 69.9%에서 2017년 67.2%로 하락했다.

그렇다면 이 간극이 세금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부가 발표하는 부동산 공시가격은 재산제, 종부세 등의 과세표준이 된다. 참여연대 보고서에 따르면 초고가 공동주택에 부과되는 보유세는 실거래가를 적용한 경우보다 많게는 1300만원가량 누락된다.

종부세는 어떨까. 서울지역에서 9억원 이상에 매매되었으나 공시가격이 9억원 미만인 아파트는 65%에 달한다. 3분의 2가 공시가격의 허술함으로 인해 종부세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시제도가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종부세의 기능마저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조세정의에 반한다.

4월 30일 공시된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은 공시가가 10% 이상 올랐고, 종부세 대상 주택은 5만채가 늘어 14만채가 되었다. 공시가격이 25% 오른 잠실주공 5단지의 경우 76.5㎡(23평) 보유자는 작년 270만원 내던 것을 올해 397만원을 내야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세금 폭탄론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보유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저항이 주택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사이의 간극을 계산해서 다시 보자. 참여연대의 분석처럼 실거래가 반영률이 65% 정도라고 보면 공시가 11억5000만원으로 책정된 집의 실거래가는 17억7000만원 정도다. 397만원이면 사실상 집값의 0.2%를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이것이 많다고 보는지 적다고 보는지에 따라 부동산세제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단지. / 김기남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단지. / 김기남 기자

공시가격은 대기업으로 가면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5대 재벌 주요 빌딩 과표실태’ 자료에 보면 5대 대기업 소유 35곳 빌딩의 공시가격 평균은 시세의 38.7%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아낄 수 있는 세금은 무려 2215억원이다. 공동주택보다 더하다.

대기업 소유 빌딩은 시세의 39% 수준

공시가격은 삼성전자의 상속·승계에도 관련돼 있다. 에버랜드의 공시지가가 370%나 급등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국토부와 감사원 조사 결과 밝혀졌다.

공시가격은 한국감정원이 조사하고 검증과 의견청취 등을 거쳐 공시된다. 그런데 국토부는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비율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올해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비율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앞의 참여연대 조사에서 보듯 이미 사실상 공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히려 역행하는 중이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위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재정개혁특위는 첫 단추로 세금 누락 효과를 심화시키는 왜곡된 부동산 공시가격을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세계 최고수준의 속도로 심화되는 한국의 자산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종부세 세율을 참여정부 수준으로 정상화해야 한다.

감정원과 경쟁관계에 있는 감정평가사협회가 고위공직자 재산 시가 확인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앞으로 공직자가 첫 재산신고를 할 때는 부동산 실거래가로 하는 것을 규정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실거래가 반영비율을 공개하지 않는 국토부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되어가고 있다. 혹시 그분들이 사는 곳이 강남이 많은 게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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